文코드 맞추려, 검증안된 지역 유물도 '가야'
[국립박물관 '가야본성'展 학계 시끌] 

창녕 교동·부산 복천동 출토 유물, 가야 것이라지만 신라 것일 가능성 
가락국기 내용에 무리하게 짜맞춘 '흙방울' 유물 자문없이 버젓이 전시 
'파사석탑' 허 왕비가 싣고 왔다며 설화 속 인물이 역사적 사실로 둔갑

국립중앙박물관(관장 배기동)이 지난 2일 개막한 특별전 '가야본성―칼과 현'에 대해 학계가 들끓고 있다. 박물관이 올해 대표 전시로 야심 차게 준비한 기획전이자 1991년 열린 '신비한 고대왕국 가야' 이후 28년 만의 가야전으로 화제를 모은 전시다. 하지만 막상 뚜껑이 열리자 "문재인 대통령이 국정과제로 내세운 '가야사 복원'에 코드를 맞추려다 대참사가 벌어졌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①허구의 인물을 史實로

도입부터 문제다. 어두컴컴한 진입로를 지나 제일 먼저 만나는 유물이 지난 3월 경북 고령군 지산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흙방울이다. 당시 조사단이 "가야 건국신화 장면을 새긴 방울"이라고 대대적으로 공개했으나 학계에서 "그림을 가락국기 내용에 무리하게 짜맞춘 해석"이란 비판을 받았다. 대다수 가야사 전문가는 "문헌 연구자에게 자문 한 번 하지 않고 성급히 발표해 빚어진 해프닝"이라고 했다. 그런 방울을 고대가요 '구지가(龜旨歌)'와 함께 버젓이 전시했다.

국립중앙박물관 특별전 ‘가야본성―칼과 현’에서 재현한 ‘가야 무사상’. 박물관은 “철갑옷으로 무장한 가야 중장기병을 생생히 볼 수 있도록 했다”고 소개했지만, 테마파크 같은 조악한 수준이란 평이다. /연합뉴스

5층으로 돌을 쌓은 파사석탑도 논란이다. 수로왕의 비(妃)인 허황옥이 아유타국에서 싣고 왔다고 '삼국유사'에 전하는 탑이다. 벽면엔 이런 설명이 붙었다. "수로는 아유타국 공주 허황옥과 혼인을 합니다. 이 만남은 기록으로 남은 최초의 국제결혼이자 다문화 가족의 시작입니다." 전문가들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가야사 연구자 A씨는 "허황옥은 설화 속 인물일 뿐 실존 인물이 아닌데 박물관이 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소개하고 있다"며 "국립박물관이 가장 하지 말아야 할 짓을 저질렀다"고 했다.

②검증 안 된 지역도 죄다 가야?

학계에서 논란 중이거나 검증 안 된 유물도 '가야'로 소개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경남 창녕 교동과 송현동 고분군에서 출토된 유물을 '비화가야'로 소개했다. 국내 가야사 연구를 대표하는 김태식 홍익대 교수는 "창녕 고분은 5세기 이후는 신라로 봐야 하기 때문에 전시된 토기들은 가야가 아니라 신라 토기"라며 "박물관이 이런 설명을 충분히 넣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B교수도 "창녕 고분 유물 중 가야계라고 볼 수 있는 유물은 1%도 안 되고 99%가 신라"라고 했다. C교수는 "박물관이 주요 전시품으로 소개한 부산 복천동 금동관(보물 1922호)도 신라 유물"이라며 "예전엔 가야 금동관으로 보는 시각도 있었으나 연구 성과가 쌓이면서 지금은 신라 유물로 보는 견해가 많다"고 했다.

가야사 연구자인 한 원로 교수는 "지자체들이 가야사 복원에 열을 올리면서 너도나도 가야라고 난리 치는 형국인데 국립박물관이 이를 거르지 않고 향토사 수준의 전시를 했다"며 "지자체마다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할 텐데 그 책임을 어떻게 지려고 이러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이에 대해 박물관 홍진근 고고역사부장은 "논란이 있는 유물이 분명 섞여 있지만 창녕이나 복천동 고분 등은 신라와 가야 유물이 혼재돼 두부 자르듯 명쾌히 구분되지 않는다"며 "넓은 의미로 가야를 해석하려 했다"고 해명했다.

③전시 개념과 구성도 엉터리

"전시의 ABC도 안 갖췄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제가 '칼과 현'인데 정작 현(絃)에 대한 내용은 없다. 김훈 소설 '현의 노래' 문장을 전시장 벽면 곳곳에 붙여 놓은 수준이다.

전시 키워드인 '공존, 화합, 힘, 번영'에 대해서도 억지라는 평이 나왔다. 박물관은 "여러 가야가 함께 어우러져 살았고(공존), 수백년간 공존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가 철(칼)을 다루는 기술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나 B교수는 "가야는 평화롭게 공존한 게 아니라 개별 독립체 여러 개가 서로 우열을 다투고 각축하며 이합집산을 거듭해 나간다"며 "그걸 공존과 화합이라고 보는 건 시대착오"라고 했다. 그는 "가야권이 넓으면 무조건 좋은 줄 알고 막 나가는데, 냉정히 말하면 일제가 말한 임나권역으로 되돌아가고 있는 것"이라며 "고고학 연구자들이 그걸 자각조차 못 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원로 교수는 "가야가 삼국에 미치지 못했다는 건 세상이 다 아는데 자꾸 과대포장하려다 빚어진 참사"라고 했다.

이 전시가 내년 일본으로 간다. 부산시립박물관(4월 1일~5월 31일)을 거쳐 일본 국립역사민속박물관(7월 6일~9월 6일), 일본 규슈국립박물관(10월 12일~12월 6일)을 순회한다. 연구자들은 "1991년 가야전 이후 축적된 연구 역량을 보여줘야 하는데 신화 수준의 전시를 들고 가면 웃음거리가 될 것"이라고 했다.

조선일보 A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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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제주박물관 '무병장수의 별 노인성' 展

"그대는 노인성을 보지 못하였는가/ 별 중에 최고의 영험을 지닌 별, 노인성이라는 별을/ 이 별은 사람들의 수명을 늘려주나니/ 별 비추는 곳마다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다네."

제주에 유배 갔던 조선 후기 문신 조관빈(1691~1757)은 별 하나에 매혹돼 이렇게 노래했다. 이름은 노인성(老人星). 목숨별(수성·壽星), 남극노인성이라고도 하고 서양에선 카노푸스라고 부른다. 태양보다 70배 크고 밤하늘에서 둘째로 밝은 별이지만 고도가 너무 낮아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이 별이 뜨면 나라가 평화로워지고 별을 본 사람은 무병장수한다고 믿었다. 우리나라에선 제주도와 남해안 일부 지역에서, 그것도 10월부터 3월까지만 볼 수 있다.

이 희귀한 별이 전시장에 떴다.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무병장수의 별 노인성, 제주를 비추다' 특별전이다. 조선 18세기 하늘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대형 그림 '신구법천문도'(가로 5m×세로 2m)를 비롯해 노인성과 관련된 역사·미술·문헌 자료가 시간의 흐름 따라 전개된다. 김명국, 김홍도, 김득신 등 조선 대표 화가들이 노인성을 의인화해 그린 '수노인도'를 모았고, 노인성이 비추는 장수의 땅 제주 이야기를 기록과 함께 풀어놓았다.

박물관 촬영팀이 한라산 정상에 올라 찍은 제주의 밤하늘. 화면에서 오른쪽 환하게 빛나는 별이 노인성이다. /국립제주박물관

밤하늘의 수많은 별에 저마다의 이름을 달아 정리한 건 약 2000년 전 중국 한나라 때다. 왜 별 이름을 '노인'이라 붙였을까. 양수미 학예연구사의 대답이 흥미롭다. "옛사람들은 노인을 단지 나이 많은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완전하고 이상적인 인간에 더 가까워지는 일이었고, 오래 사는 것은 곧 인간으로서 완성된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이 강력하고 빛나는 별에 인간 최고의 가치인 '수명(壽命)'을 부여하고, 황제와 제국의 운명을 별에 물었다는 얘기다.

압권은 한라산 정상에서 타임랩스 기법으로 촬영한 제주의 밤하늘. 노인성이 뜨고 지는 백록담의 밤 풍경이 대형 스크린 위에서 장엄하게 펼쳐진다. 아득한 천공(天空)이 아니라 서귀포 앞바다 수평선 위에 내려앉아 홀로 영롱하게 빛난다. 박물관은 작년 12월부터 네 차례 시도한 끝에 개막을 열흘 앞두고 카메라에 별을 담는 데 성공했다. 4분짜리 영상이 여러 번 돌아갈 때까지 화면 앞에 앉아 소원 하나를 빌었다. 전시는 6월 16일까지.

조선일보 A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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