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청은 잊혀져 가는 예술이다

대중에게 다가서는 지름길은
그들에게 혀를 내미는 것이 아니라 귀를 내미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에게 어떤 달콤한 말을 한다 해도,
상대방 입장에서는 자기가 말하고 싶어 하는 얘기의
절반만큼도 흥미롭지가 않은 법이다.
- 신문 칼럼리스트, 도로시 딕스 (최염순 '미인대칭비비불'서 인용)


2천년 전 로마 정치가 키케로는 '침묵은 예술이다. 웅변도 예술이다.
그러나 경청은 잊혀져가는 예술이다. 경청을 잘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라고
경청의 중요성과 실천의 어려움을 역설한 바 있습니다.

들음으로써 타인의 마음을 얻는, 이청득심(以聽得心)의 지혜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실천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이청득심(以聽得心)이라는 말이 있다.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들으면 그 마음을 얻을 수 있다’는 말이다. 경청은 귀 기울여 듣는다는 뜻이다. 한자로 살펴보면 의미가 좀 더 분명해진다. 경청(傾聽)은 귀 기울일 경, 들을 청으로 구성되는데, ‘청’자를 다시 뜯어보면 왕과 같은 귀, 열 개의 눈, 하나의 마음으로 이뤄져 있다. 과거부터 경청은 귀를 기울여 상대의 말을 듣고, 눈은 2개지만 10개로 만들어 상대방의 미세한 동작까지 관찰하는 한편, 집중해서 상대의 마음까지 헤아리는 것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