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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2026-09-12,13. 백련산 하이킹(a.k.a 곤충채집)

 

여름의 끝자락에 마지막 곤충채집. 

 

사슴벌레 암컷 한마리 채집하고 마무리. 

 

토요일 오후 2시, 오후5시 2번 등반. 

일요일 아침 7시 1번 등반. 

 

보라색원이 화장실 위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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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보는 것'(觀)

 

현대인들은
보이는 것을 너무 쉽게 믿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보이는 것들 사이의 행간을 관찰[觀]하는 것을
한가로운 일로 여긴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 이상,
잘 보는 것[觀]의 중요성을
다시 돌아볼 필요가 있다.


- 이승훈의 《인생 어휘》 중에서 -


* 행간(行間)을 읽을 줄 알아야
좋은 독자, 무서운 독자라 할 수 있습니다.
행과 행 사이, 곧 '글과 글 사이'를 읽는 능력입니다.
보이는 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을 '관'(觀)이라 합니다. 그래야
사람과 사람 사이, 행복과 불행 사이도
잘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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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직업은 화가에요
매일매일
두 점의 그림을 그리지요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이에요.


- 문재규 디카시집《틈새꽃》에 실린
시 <엽낭게> 전문에서 -


* 모든 일은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먹고사는 일과 관계없이 하는 일도 있습니다.
돈을 벌든 못 벌든, 누가 보든 안 보든
자꾸 하게 되고, 또 하고 싶은 일!
그것이 소명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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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의 삶을 산다는 것

 

우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은 진짜 삶이다.
진짜 경험, 진짜 관계이다. 진실을
마주하면 더불어 따라오는 다른 것들도 있다.
실제로는 우리에게 한 번도 주어진 적 없었던 것들에
대한 슬픔도 함께 밀려온다. 우리가 그 주변을 맴돌며
억지로 만들어 손에 쥐려 했던 것들, 애써 진짜처럼
꾸몄지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았던 것들에
대한 슬픔이다.


- 잉그리드 클레이튼의《포닝》중에서 -


* 진짜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금, 여기'에 온전히 있어야 합니다.
나의 의식이 '과거'나 '미래'로 오가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여기'에서 존재해야 합니다. 확실하게
실재하는 것은 바로 '지금'이기 때문입니다. 진짜의
삶을 산다는 것은 실재하지도 않는 것을
마냥 쫓는 것이 아닙니다. '현존'하는
'지금, 여기'에 충실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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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길

 

가장 멀고
가장 빛나는 길은
내가 나를 찾아가는 길이다

예전 같으면 지도부터 찾았을 것이다
지도에 남겨진 발자국을 따라 걸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필요한 건
오직 편한 신발 한 켤레뿐
그거면 족하다

길은 내가 만든다

나의 길
때로는 길을 잃어
제자리를 맴돌고 먼 길 되돌아 나와도
아무도 걷지 않은 길
누구도 밟지 않은 땅

내가 길을 만들고
길이 나를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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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슬픔의 자리

 

아이들에게는
더 많은 슬픔의 자리가 필요하겠다.
슬픔을 통해서야말로 타자의 위치에
가까워질 수 있기 때문에 타인의 슬픔을
이해하는 건 불가능하더라도, 그렇기에 슬픔에 대해
나누는 시간을 아이들이 아직은 온전히 수용하지
못하더라도 말이야. 그 나눔과 마주함으로써
이미 어떤 힘을 불어넣고 있다고 믿어.
서로의 목소리를 통해서
점점 열린다고 믿어.


- 최지혜, 하고운의 《교실 바깥의 마음》 중에서 -


* 어릴 적 슬픔의 자리는
아마도 기르던 병아리의 죽음이나
강아지나 고양이와의 이별이었을 것입니다.
반려견이 차에 치여 죽자 대성통곡하던 딸아이가
생각납니다. 그 허망한 상실과 슬픔의 자리를 통해
만남, 헤어짐, 죽음 등에 관한 사유의 싹을 키웁니다.
그렇게 아이들은 슬픔을 통해 성장하고
어른이 되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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