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1
이튿날, 새소리에 잠이 깨었는데 산속의 나무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게 기분이 너무 상쾌하였다.
라면과 전날 남은 목살로 아침을 해결하고 천관산 하산.
관산읍으로 향하여 23번 국도를 타고 마량리 쪽으로 돌아서 사당리에 있는 청자박물관으로 이동했다.
역시 좋은 유물은 서울의 국립중앙박물관 등 다른곳에 있고 여기엔 그다지 좋은 유물을 보기가 쉽지 않다.
청자박물관을 구경하고, 23번 국도를 타고 쭉 올라가 강진을 지나 무위사로 향했다.
무위사.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무위사로 308.
무위사 극락보전 국보 제13호.
무위사는 강진읍에서 북서쪽으로 16km 쯤에 자리한다. 이 절의 기록에 의하면 신라 진 평왕 39년(617년)에 원효대사가 이곳 월출산 남쪽 기슭에 창건하여 관음사라 했다가 1 555년 태감선사가 지금의 이름인 "무위사"로 불렀다고 전한다. 극락보전을 제외하고는, 그당시 지어졌던 대부분의 건축물들이 임진왜란때 소실 되어 버 렸다. 극락보전은 조선초기에 지어진 것으로 국보 제13호로 지정되어 있다. 해방 이후 1 956년에 극락전을 수리 보수하고 보존각을 새로 세워 그 안에 벽화를 봉안했다. 그 후 1 975년에는 봉향각 해탈문·명부전·천불전을 다시 지었다. 고려시대에 세워진 선각대사 편광탑비 (보물제507호)와 삼층석탑(도지정 문화재자료76호)이 경내에 남아 있었다.
무위사의 극락보전은 국보된 세계적인 건축물이다. 내부의 벽화는 조선시대 최고의 걸작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이중 아미타삼존불과 수월 관음도는 극락보전에 있고 나머지 벽화는 보존각에 진열되어 왔다. 아미타삼존불은 4각의 연화대좌에 결가부좌를 하고, 관음과 지장보살이 협시한 불화로 서 매우 희귀한 걸작 예술품이다. 수월관음도는 아미타삼존도가 그려진 벽의 뒷면에 그려진 불화로서 넓적한 얼굴, 굵은 목, 넓은 어깨 등 건장한 남성적 요소가 여실하다.
무위사가 보존각에 보관해온 극락보전(국보 제13호)의 벽화 29점, 상량보 1점을 포함한 30점의 벽화는 2006년 개관된 무위사 내 성보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무위사를 나와 백운로를 월출산 국립공원 입구 방향으로 달리다 보면 다산 선생의 유배지인것이 확실하듯 넓은 차밭이 나온다 .
"오설록" 차밭과 그 뒤의 월출산의 운해를 잠시 구경하고, 월남사지로 이동.
월남사지는 큰 탑을 보고 알수 있었다. 뭔가 쉽게 찾지는 못할 비쥬얼이랄까.
월남사지.
전라남도 강진군 성전면 월남1길 100.
월남사지는 월출산 정상과 양자암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평지에 위치한 전면 175m, 측면 185m인 장방형의 사지로 총 면적은 1만여평에 달하고 있으며 옛날에는 그 규모나 지세면에서 인근 무위사보다 컸으리라 추측된다. 지금은 백제계 석탑이라 하여 주목받고 있는 삼층석탑 (보물 298호)과 진각국사비 (보물 313호) 등 2점의 유물이 남아있으며 석탑을 주변으로 외각 담장의 흔적이 남아 있다. 또한 주변 민가에 사리의 기단석이나 탑의 기단부로 보이는 유물들이 남아 있다. 월남사지에서는 기와와 청자,백자편 등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이들 대부분이 고려에서 조선 시대의 유물들이며 특히 월남사의 건물벽에 사용되었던것으로 추측되는 청자타이루편이 발견되어 관심을 기울이게 하고 있다.
그리고, 해남으로 이동.
미황사
미황사 대웅전 보물 제947호
응진당 보물 제1183호
괘불 보물 제1342호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 서정리 247
달마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데 장바비 구름이 한껏 껴있어서 달마산과 어울어지는 풍광을 볼수 없었다.
남해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489m) 서쪽에, 우리나라 육지의 사찰 가운데 가장 남쪽에 자리한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세워졌다. 불교가 한창 흥할 때는 불교의 요람이 되어 스님도 많았고 주위에 12암자를 거느리고 있었다.
미황사는 조선시대 중.후기에 걸쳐 이 같은 융성을 거듭하다 100년전 주지 혼허(渾墟) 스님이 중창을위해 모금차 군고단(軍鼓團)을 이끌고 완도와 청산도를 가다 배가 조난을 당한 뒤에 점차 퇴락하게 되었다고 한다. 퇴락한지 100년이 흐른 후, 현재 미황사에 주석하고 있는 지운스님과 현공스님, 금강스님이 1989년에 주인없이 비어 있던 미황사를 찾아 흔적만 남아 있던 명부전, 삼성각, 만하당, 달마전, 부도암 등을 복원하고 퇴락한 세심당을 다시 일으켜 세웠다. 10여년 간 중창불사 원력을 세워 끊임 없이 노력한 결과 이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로 면모가 일신되었다. 현재의 전각은 대웅보전 (보물 947호), 응진당 (보물 1183호)과 명부전, 삼성각, 만하당(선원), 달마전(승방), 세심당(수련원), 요사체(후원), 향적전(객실), 안심료(후원), 자하루(누각), 감로다실(종무소)이 반듯하게 자리하고 있다.
해남까지 왔으니 땅끝마을 구경은 해봐야 겠어서 땅끝전망대로 이동.
날씨만 좋았으면 보길도, 청산도 가보고 싶었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땅끝전망대는 뭐 그냥 생각했던것 보다는 좀 아쉬웠다. 만리포의 느낌이랄까.
그래도,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바다와 섬은 정말 멋있었다.
날씨 맑은날 석양을 전망대에서 본다면 무지 좋을거 같은 느낌.
땅끝마을에서 숙소를 잡기는 좀 그래서, 완도로 이동.
77번 국도를 타고 가다 13번 국도로 갈아탄후 바로 남창교와 완도대교를 통과.
"청해진로"를 따라 쭉 달려 완도항만여객선터미널 못가서 완도항에 도착.
며칠만에 커피인가? 길가다본 캐냐 에스프레소에서 커피 한잔.
모텔들이 많았는데, 일요일 저녁이다 보니 한가하고 평일 요금을 받더라. 일반실 4만원, 특실 5만원.
특실이 "해변뷰"일거 같아서 7층 높이의 피아노모텔에 제일 층수 높은 방으로 투숙.
항구쪽 식당가에 있는 모텔은 좀 시끄러울거 같아서.
맛집 검색이 이어진다. 어제 무리했기때문에 많은 비용을 식비에 지출하기 부담스러웠다.
일억조식당이 가장 유력했는데. 가보니 세트는 너무 비싸서 단품으로 전복물회와 전복죽을 시켰더니 1인분은 안된단다. 그래서, 전복물회를 2개 시켰는데, 전복은 한마리로 물회 두 그릇을 만드나보다. 좀 실망스러운걸.
옆 에 3개 테이블에 손님이 있었는데, 다들 세트메뉴!!! 나오는거 보니 대박이다. 세상에 식당에서 빈부의 격차를 느껴보기는 난생처음. 하지만 완전 맛나보인다. 전복가격이 쌀 것이라고 생각한 내가 바보지. 다음엔 시장서 전복만 사다가 먹어봐야지. 하지만 언제 여기 다시 올것인지 원. 후딱 물회먹고, 근처 훼미리마트에서 컵라면에 맥주사다가 먹으며 그렇게 완도에서의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