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북 울진군 부구리의 신한울 2호기 바로 맞은편에서 신한울 3, 4호기 부지 조성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 제공
“저기 빨간 깃발과 파란 깃발이 꽂힌 곳에 ‘신한울 3, 4호기’ 원자로가 들어섭니다.”
서용관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 신한울제2건설소장이 지난 11일 경북 울진군 부구리 해안가 인근에 펼쳐진 0.92㎢(약 28만평) 규모의 텅빈 부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철망이 둘러쳐진 부지 안에서 대형 굴착기 등이 누런 흙밭에서 돌을 골라내고 땅을 다지는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현재 정부 실시계획 승인 뒤 부지 터를 다지는 작업 중이고, 조만간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건설 허가가 나면 본격적인 공사를 진행해 2032년 준공할 계획입니다.”
원전(핵발전소)은 건설 비용 등 절감을 위해 대개 ‘2기씩 쌍’(모듈)으로 지어지는데, 두 기의 원전을 상징하는 빨간 깃발과 파란 깃발 사이는 불과 15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서 소장이 가리킨 파란 깃발 뒤편 주차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회색 돔을 얹은 ‘신한울 1, 2호기’가 한창 가동(상업운전) 중인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 옆으로 해안가를 따라, ‘한울’(울진) 원전 6기가 6호기부터 1호기까지 역순으로 줄지어 돌아가고 있었다. 국내 한해 전기 사용량(5500억 kWh)의 12%(약 670억 kWh)가량을 생산하는 원전 8개가 한 지역에 집중돼 있는 것이다.
경상북도 북동쪽 끝 면적 989㎢, 인구 4만6390명의 도시 울진군은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 지역이다. 신한울 3, 4호기는 이곳에 들어서게 될 9, 10번째 원전이다. 2016년 발생한 경주 지진을 계기로 문재인 정부는 신한울 3, 4호기 건설 계획을 중단했지만, ‘탈원전 정책 폐기’ 공약을 내세운 윤석열 정부는 이 원전 건설을 재개하기로 결정했다. 세계적 대형 원전 단지로 꼽히는 캐나다 피커링과 인도 라자스탄, 우크라이나 자포리자(원전 6기)보다도 높았던 밀집도를 더 높인 셈이다. 그만큼 원전 1기의 문제가 연쇄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도 크다는 얘기다.
이날 이순범 한수원 신한울제1발전소 기술실장은 지난 5일 상업운전을 시작한 ‘최신’ 원전 신한울 2호기 내부를 공개하며 “예측 가능한 모든 위험에 대응할 수 있다”고 힘주어 말했다. “120㎝ 이상 두께의 원자로 외벽은 전투기가 충돌해도 끄떡없고, 지진도 최대 진도 7까지 견디도록 내진 설계가 돼 있다”는 것이다. 원전의 ‘두뇌’ 격인 주제어실 안에는 원자로와 터빈 등 주요 설비 작동·이상 상황이 실시간으로 표시되는 대형모니터와 디지털 장치 고장시 직접 손으로 제어할 수 있는 아날로그 장비 배치돼 있었다.
울진에서 농사를 짓는 이규봉씨가 12일 경북 울진군 부구리 해안가에 줄지어선 한울 원전을 가리키고 있다. 오른쪽부터 각진 원자로가 한울 1, 2호기고, 타원형 원자로가 3, 4, 5, 6호기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후쿠시마는 안전한 설비가 아니라서 사고가 났는교?”
30년 넘게 울진에서 원전 반대 운동을 해온 이규봉(58)씨가 이런 말이 탐탁치 않다는 듯, 해안가에 줄지어 선 원전 단지를 가리키며 말했다. 그는 2022년 3월, 울진을 덮친 산불이 원전 앞까지 번져 원전 부지 안팎 나무에 아직까지 검게 그을린 흔적이 남아있다는 점을 상기시키며 “핵발전소가 안전하다는 말은 인간의 오만”이라고 말했다.
신규 원전 건설로 위험성은 더 커지고 있지만 “수십년간 핵발전소가 군민들 삶 깊이 스며들면서 (군민들마저) 위험함을 잊어버리고 사는 게 현실”이다. 한수원 울진본부와 협력사 등에서 일하는 이들과 가족 등 울진군민 4명 중 1명(1만여명)이 원전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된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신규 원전 건설에 동원되는 일용직 노동자와 음식을 파는 자영업자 수도 수천명에 달한다. 이씨는 “원전 반대 운동을 하던 동생도 가족 생계를 위해 한수원 협력사에서 일하고 있다”며 “큰 기업이 없는 시골에서 내 가족에게 월급을 주고, 가구 전기비도 지원(170kWh 한도)해 주는데 어떻게 핵발전소에 반대할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2022년 3월 발생한 울진 산불이 한울원자력발전본부 펜스 내 송전망 시설까지 번져 근처 나무들이 검게 그을려 있다. 옥기원 기자 ok@hani.co.kr
울진군청 앞에서 만난 택시 운전자 박아무개씨도 “원전 1기 터지나 10기 터지나 죽는 건 매한가지”라며 “군민 대다수가 새 원전 건설 반대를 포기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원전을 원하지 않았지만 막상 한수원 직원들이 있어 나도, 가게들도 밥 벌어 먹고 살고 있다”며 “원전 관계자와 노인들만 남은 울진군에서 원전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오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전영환 홍익대 교수(전자전기공학)는 이와 관련해 “수도권의 막대한 전력 소비를 위해 울진과 동해 작은 마을에 원전(으로 인한 위험)을 떠안기고 있는 것”이라며 발전 시설의 공정한 배치를 위해 전 국민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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