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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소심하지 않은, 갈대와 철새의 노래가 있는 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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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소심하지 않은, 갈대와 철새의 노래가 있는 곳 - 제주의소리

을씨년스런 하늘에 쌀쌀한 기운, 제법 겨울 날씨답다. 겨울 무 수확 철이라는 걸 알리듯 간혹 휘어진 길엔 트럭에서 쏟아진 무가 뒹굴고 있다. 그런가 하면 노랗게 핀 배추꽃이 계절을 의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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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씨년스런 하늘에 쌀쌀한 기운, 제법 겨울 날씨답다. 겨울 무 수확 철이라는 걸 알리듯 간혹 휘어진 길엔 트럭에서 쏟아진 무가 뒹굴고 있다. 그런가 하면 노랗게 핀 배추꽃이 계절을 의심하게도 한다. 책방을 찾아가는 동안 난 잠시 추리소설 속 인물이 되어 사건의 클라이맥스 한 부분으로 들어서는 것도 같았다. 책방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서 있는 길로 안내하는 내비 속에 찍힌 ‘수상한 소금밭’이라는 이름 때문이다.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내비를 설정했다. 그래도 마찬가지다. 이상하다 여기면서 따라갔더니 갈대밭 한가운데 책방이 있다. ‘수상한 소금밭’은 남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였다. 한창 푸르름을 자랑하면서 하늘거리던 갈대도 갈색이 된 지금, 그 황량함을 메워줄 철새가 찾아드는 때다. 책방 가까이 있는 못에는 오리 떼들이 몰려와 있었다.

소심한 책방을 찾아가는 길, 배추꽃이 노랗게 피어 계절을 의심하게 한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섬진강 근처에서 주막집을 꿈꾸던 책방지기”

마을 책방을 찾아다니면서 제일 가고 싶었던 곳이 소심한 책방이다. 제주도 내 마을 책방을 활성화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 곳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직원과 한번 통화를 했었다. 책방 대표로부터 이사해서 정신없으니 나중에 하자는 문자를 받았다. 왠지는 모른다. 문자에서 묻어나는 느낌은 지긋이 저음인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다. 

취재를 완곡한 표현으로 거절하는 것일까?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전화했다. 통화의 상대는 문자에서 느꼈던 인물이 아닌 앳된 여학생 같았다. 그 사이 책방을 딸에게 물려주기라도 했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찾아갔다. 지미봉이 바닷바람을 막아주듯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곳이다.

통화의 주인공은 책방지기 현미라 씨였다. 통화에서 느꼈던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외모도 청순가련한 여고생 이미지였다. 나이 마흔이라는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고향이 경상도인 책방지기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2012년에 제주로 내려왔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를 하다가 2014년 5월, 서울에 사는 친구와 함께 책방을 오픈했다. 

처음부터 제주로 와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다. 현미라 씨는 20대 초반부터 섬진강 근처에서 주막집을 하고 싶다는 동경을 지니고 있었다. 재첩도 잡으면서 아카시아 술을 담그고, 즉석에서 부침개도 부쳐서 팔고 싶었다. 그래서 말의 씨앗을 뿌리듯 자신의 심중을 떠벌리다시피 하고 다녔다. 남편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전 남편은 이런 생활을 동경하는 그에게 그렇게 살면 너무 재밌겠다면서 호응해줬다. 그렇게 자기 생각을 지지해 주는 남편과 결혼했다. 그런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 현실은 달랐다. 꿈은 이상이었을 뿐이었다, 

지금 구좌읍엔 겨울 무 수확이 한창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깜짝 이벤트에서 맺은 인연, 제주도”

현미라 씨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고, 남편은 카페 혹은 맥주펍 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다. 어딜 가나 그렇지만 권리금이며 임대료 등 모든 게 비쌌다. 섣불리 덤빌 수 없는 상황, 정신적으로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여행이나 가자고 했다. 현미라 씨는 한 달여 동안 네팔과 티베트로 떠났다. 해외에서 들어올 때 남편은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 있었다. 현미라 씨는 남편을 위한 깜짝 이벤트로 연락도 없이 제주도로 왔다. 

안나푸르나 트래킹은 일주일이나 열흘이 보통이다. 제주에서 남편을 만난 현미라 씨는 때에 따라 카페도 식당도 숙소도 되는 롯지를 안나푸르나에서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은 아니라고 했다. 절충점을 찾던 중 제주에서 지내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오갔다. 부부는 다시 제주도 여행을 하게 되었고, 여행하다 보니 제주에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제주도에서 살기로 하고 바로 내려왔다.

그런데 왜 하필 종달리였을까.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간 뒤 책방지기는 하던 일을 계속해야 했다. 남편은 제주도로 내려와서 정착할 곳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가진 돈도 없고, 쉽지 않았다. 어느 날 근무 중 제주도에 있는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종달리란 곳인데 사방이 갈대밭이고 아무것도 없다.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이는데 땅값은 여기가 제일 싸다.”

남편이 고른 곳이다. 계약하고 보자고 했다. 한마디로 종달리로 오게 된 건 다른 곳보다 땅값이 쌌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미라 씨는 완전히 이주할 때야 자신들이 정착할 땅을 처음 보게 되었다. 

수확한 무를 싣고 가는 트럭이 버거워 보인다. 사람은 자신이 살기 위해 허리가 휘지만, 트럭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적재함이 휘고, 바퀴가 절뚝거린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까레이스끼 끝없는 방랑”

만삭의 몸을 이끌고 제주로 온 책방지기의 눈앞엔 갈대만 흔들리는, 보이는 건 오로지 허허벌판이었다. 왜였을까, 나도 모르게 문영숙의 “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출판 푸른책들)”이 떠올랐다. 

이야기의 서술자인 동화네는 까레이스키 가족이다. 이유도 없이 소련 사람들에게 잡혀간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 게다가 어머니는 만삭이다.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추수를 앞둔 벼마저 그대로 두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올라야 했다. 화장실도 없는 가축 운반용 화물차였다. 언제 올지 모르는 아버지를 두고 떠난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떠나는 건 선택이 아니라 강제다. 해산바라지할 짐도 허용하지 않았다. 모두 일본이 첩자를 키워 소련과 까레이스키를 이간시켰기 때문이다.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까무러치기를 몇 번, 엄마는 화물차 안에서 아기를 낳았다. 그러나 아기는 울지 않았다. 엄마도 일어나지 못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내무인민위원들은 시체를 끌어내고 눈 속에 던져버렸다. 같은 열차 칸에 탔던 함흥댁의 아기도 죽었다. 죽은 아기가 어디 함흥댁 아기뿐이랴마는, 실성한 함흥댁은 죽은 아기를 업고 다니며 자장가를 불렀다. 열차 안에는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홍범도 장군도 있었지만,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처지였다. 그는 나중에 크질오르다에 있는 극장 청소부로 보내어지고 여섯 해를 살다가 75살에 돌아가셨다.

40여 일을 달려 도착한 곳은 나무 한 그루 없는 카자흐스탄의 허허벌판 우슈토베 지방이었다. 이곳에서 까레이스키들은 맨손으로 땅을 파며 잠잘 곳을 마련했다. 추위와 굶주림, 늑대와 질병에 맞서 싸웠다. 이곳에서 동화는 남은 가족인 오빠와 할아버지도 잃었다. 그래도 까레이스키들은 불굴의 의지와 타고난 성실함으로 땅의 염분을 씻어내는 등 척박한 땅을 일구고 서서히 사람다운 삶을 되찾아 간다. 그런데 유럽의 이주민이 유입되며 정착지에는 새로운 긴장감이 감돌고, 까레이스키들의 놀라운 농사 기술과 노동력을 이용하려는 소련은 집단 농장 제도를 강요하며 위협한다. 동화는 아버지의 소식을 찾기 위해 유랑 극단을 쫓아 러시아 전역을 여행하기도 하고, 노력 영웅이 되기 위해 고된 노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화 앞에 도착한 건 아버지의 사망 통지서다. 소련 해체와 동시에 정착지에서 쫓겨난 까레이스키들은 러시아 전역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까레이스키란 조선 후기 이래 러시아로 이주한 한인의 후손을 가리키는 말로 고려인이라고도 부른다.

소심한 책방 내부다. 책방은 이름과 달리 넓고 정갈하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갈대밭”

책방 근처는 아닌 게 아니라 온통 갈대밭이다. 그 갈대밭을 보며 허허벌판 우슈토베 지방에 도착했던 까레이스키들을 떠올렸고, 만삭이었던 현미라 씨를 생각하며 동화의 엄마를 떠올렸다. 처음 이곳에 이주했을 때 얼마나 황당했을까에 생각이 미치다 보니 그랬다.

책방 가까이엔 못이 하나 있는 데 오리 떼가 몰려와 있었다. 근처 갈대밭은 원래 개인 소유가 아니고 산 번지인 뻘밭이었다. 마지막에 논을 없애면서 개인에게 분양하겠다고 했을 때, 그곳에서 경작하던 사람들이 분양을 받은 곳은 메우고 개간했지만, 지미봉 중심으로는 개인에게 분양이 안 됐다고 한다. 어떤 이유였는지는 모른다. 땅값이 이렇게 뛸 줄도 몰랐겠지만, 지미봉 중심은 보존 필요성이 있어서 분양을 안 했을 수도 있다. 분양을 안 했는지 안 된 건지 모르지만 남은 곳은 온통 갈대밭으로 변해 있었다. 지미봉은 흙이 아니라 송이산이다. 역대 이장들이 송이를 파내면서 지미봉엔 능선이 완전히 뚝 잘린 곳이 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보존을 위하여 지미봉 주변 논밭은 분양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지나면서 갈대 사이로 드문드문 갈색이 보였다. 함초일까 싶어서 가까이 가 보았다. 마른 여뀌였다. 바닥에는 미나리가 땅에 바짝 붙어 있었는데 돌미나리다. 아닌 게 아니라 종달리가 고향인 지인에게 여쭸더니 여기 미나리는 장난이 아닐 정도로 맛이 기막히다고 한다. 

책방 내부다. 약 99.17m²의 책방에 4,000여 권의 책이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아지트가 필요해”

어쨌든 부부는 갈대밭 한가운데 집을 짓고, ‘수상한 소금밭’이란 간판을 내걸어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했다. 당시 제주엔 이주민이 그다지 많지 않은 때다. 따라서 카페는 물론 아무것도 없었다. 제주에 와서 태어난 아기는 어렸고, 오로지 게스트하우스 안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현미라 씨는 숨이 막혔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어느 날 문득, 갈대밭 사이를 산책하던 현미라 씨는 자신만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글을 쓰며 친해지게 된 친구에게 전화했다. 이 친구는 서울에 있는 언니인데, 한 달에 한 20~30만 원씩 용돈 좀 쓸 수 있냐고 물어봤다.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월세 내고 친구가 서울에서 오가는 항공료 정도는 충분할 것 같았다. 친구에게 작업실을 하나 마련하자고 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했다.

이때만 해도 책방은 생각하지 못했다. 이 이야기가 오간 뒤부터 곗돈 붓듯이 한 달에 20만 원씩 돈을 모았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종달리 외 다른 곳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계속 걸으면서 살피다가 드디어 찾았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둘만의 작업실이 구체화 되기 시작했다. 글 쓰는 사람도 아니고 그림 그리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므로 작업이랄 것도 없었다. 그저 둘이 좋아하는 것을 둘 수 있으면 그로 족했다. 둘 사이 좋아하는 것의 공통분모는 책이었다. 아지트에 책이 쌓이면서 아주 자연스레 책방으로 연결되었다. 이때가 2014년이었다. 그렇게 책방은 친구와 동업하게 되었다. 

책방 내부 한 공간에서 창을 통해 바라보니 액자처럼 되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음료는 옵션일 뿐”

책방을 시작하고 올해 3월, 자리를 비워야 했다. 책방을 하던 곳은 소를 키우던 축사를 살림집으로 고쳤다가 오래 방치된 창고 같은 곳이었다. 그런 집을 고쳐서 책방을 했으니 아무래도 옛날 분위기가 깔려 있어서 정서적으로는 아늑했다. 그런데 주인이 그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집을 짓게 되었다.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3월에 그 집을 비우고, 게스트하우스 안에 책방을 꾸미는 동안 근처에 임시 있다가 이번 여름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책방도 어느덧 8년 가까이 되었다. 

책방 공간은 꽤 넓었다. 약 99.17m²의 공간에 4,000여 권의 책이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음료도 판매한다. 그렇다고 음료가 중심인 책방카페라는 뜻은 아니다. 대부분 책방카페라 하면 음료가 주 판매업종이고 책이 옵션이다. 한마디로 소심한 책방은 음료보다 책이 우선시되는 곳이라는 뜻이다. 음료는 단지 오래 머무르는 사람이 필요로 하므로 그들을 위해서 갖춰 놓았을 뿐 판매가 목적은 아니다. 부부는 오로지 땅이 싸다는 이유로 종달리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하게 되었고, 이어서 현미라 씨는 친구와 함께 책방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도내에서 책방이 가장 많은 곳이 구좌읍이었다. 왜일까? 부부가 선택한 것처럼 종달리가 땅값이 싸기 때문일까, 아니면 특히 아름다운 곳이어서 그런 것일까. 이유는 모르겠다. 어쨌든 구좌읍에는 다른 지역보다 책방이 많았다. 덕분에 난 개인적으로 하도리 토끼섬밖에 가 본 적이 없는 곳인데 핑계 삼아 여러 번 드나들게 되었다.

널찍하고 시원한 책방엔 꽤 많은 손님이 드나들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꽃씨가 여문다는 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책방지기도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는 쓰는 것 보다 읽는 걸 더 좋아한다고 한다. 어릴 땐 일기도 자주 쓰고 했지만, 지금은 분산되는 에너지 중에서 읽는데 신경을 더 많이 쏟는다. 그래도 언젠가는 읽기에 몰린 것들이 모여들어 글쓰기로 수확하는 날이 올 것이다. 책방 동업자인 언니라는 분도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친해졌다고 했다. 이런 사실만 보더라도 그에게는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다는 뜻이다. 

언제부터인가 난 종종 디카시를 쓰고 있다. 나는 형님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 시댁에 들른다. 그렇게 시댁에 다녀오는 날이면 봉개동에 있는 한 카페에 자주 들른다. 그 카페에 딸린 야외정원이 있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야외정원을 둘러보노라면 아늑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날도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시면서 정원을 둘러보고 있었다. 꽃이 지고 까만 눈동자처럼 동글동글 씨앗을 맺은 범부채가 내 발길을 잡았다. 카메라에 담은 사진을 보면서 문득 꽃씨가 여문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디카시 한 편을 썼는데, 책방지기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시가 생각났다. 그가 읽고 생각하던 것들이 지금은 뜬구름으로 떠돌고 있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잘 여문 열매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왔기 때문이다. 아직 마흔, 늦지 않았다. 50이 넘어서 글을 쓰는 사람도 있고, 70이 넘어서 그림을 배우는 사람도 있다.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듯이 그의 재능은 숨길 수 없고, 언젠가는 주머니를 뚫고 세상 밖으로 나올 것이다. 

꽃씨가 여문다는 건 / 고봉선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한때는 흔들리며
뜬구름으로 
떠돌던 꿈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세밑을 맞이하여 책방 안에는 트리형으로 책을 쌓아 놓았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저마다의 소질과 인연”

하고픈 일을 한다는 건 나를 온화하게 하는 일이다. 내가 만약 글을 쓰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내 몸은 온통 가시투성이일 것이다. 예전의 난 참으로 까칠했다. 사는 게 고달프다 보니 육체도 마음도 온통 가시밭이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달라졌다. 그 많던 가시들이 조금씩 마모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소질과 인연이 있다. 비록 서울에 산다는 동업자 책방지기는 만나보지 못했지만, 그분 역시 현미라 씨와 닮은꼴이 많을 것이다. 둘은 같은 길을 8년 가까이나 탈 없이 해 왔고, 앞으로도 그리 갈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소질과 인연의 연줄이다. 자신의 소질과 인연을 따라가지 않을 땐 삶이 자꾸 삐거덕거린다는 게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얻은 경험치다. 현미라 씨 역시 책방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자못 궁금하기도 했다. 

해외여행이라면 부부가 같이 가는 게 보편적이다. 그런데 현미라 씨는 혼자, 그것도 한 달 동안이나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그는 여행하며 안나푸르나에서 롯지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남편이 안 된다고 하자 인연의 방향은 제주도가 되었다. 일단 여기까지는 게스트하우스와의 인연이다. 책방은 그 뒤의 몫으로 인연 뒤에 숨어 있었다. 게스트하우스가 자리 잡으면서 다음 차례인 책방이 슬그머니 머리를 내밀었다. 이어서 현미라 씨는 블로그 글쓰기에서 만난 친구를 떠올렸고, 두 사람은 동업자가 되었다. 

현미라 씨 혼자 해외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남편은 제주도로 여행을 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때 하필 제주도로 여행을 오지 않았더라면 현미라 씨 또한 제주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제주도에서 땅을 사겠다는 생각조차도 못 했을 것이다. 이래저래 상황은 두 사람을 제주로 오게 했고, 방황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도출점도 찾았다. 이 모든 것조차도 어찌 보면 인연이었다. 

게스트하우스(수상한 소금밭)와 책방을 같이 운영하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에피소드”

어려서는 대부분 가난했다. 현미라 씨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님은 책 읽는 공간을 따로 마련해주거나 그러지 못했다. 그저 하나 있는 라디오를 자주 들었고, 학생 때는 방송반에서 원고 쓰는 일을 담당했다. 그러다 보니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학교 도서관을 찾게 되었다. 비록 읽어야 할 책보다는 문제집을 사기에 급급했지만 그래도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다. 신문을 보다가 책 광고에 꽂혔다. 전집 광고였는데 책장까지 딸린 게 너무나 근사했다. 어린 현미라 씨는 처음으로 부모님께 그 책을 사달라고 졸랐다. 다행히도 부모님께서는 어렵사리 돈을 마련하여 사주셨고, 딸에게 책을 사줬다는 사실을 굉장히 뿌듯해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광고로 본 것과 다르더라는 것이었다. 초등학생이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어려운 한자도 많았고 또 두꺼웠다. 두고두고 봤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도 내용은 어려웠다. 어떻게 산 책인데, 차마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할머니 집에 책장이 다 부서질 때까지 보관했었다. 

책방지기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생각나는 게 있다. 내게 독서수업을 받는 아이 중 유튜브에서 설민석의 북 리뷰를 즐겨 보는 6학년 아이가 있다. 이 아이가 어느 날 설민석의 총균쇠 리뷰에 빠져버렸다. 총균쇠가 너무 매력적이고 재미있게 보였던 아이는 엄마를 졸라서 그 책을 샀다. 그런데 책을 받고 포장지를 뜯은 아이는 넋이 나가버렸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자신은 도저히 가까이할 수 없는 책이었다. 그러던 중에 내가 그 아이 엄마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아이 엄마로부터 사정을 전해 들은 나는 아이에게 책 표지 사진을 찍어서 보내라고 했다. 나도 핑계에 읽을 겸 그 책을 주문했다. 그리고 아이한테 화상으로 접속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같이 읽자고 했다. 아이는 구세주라도 만난 듯 좋아했다. 책을 읽기 전 난 아이에게 주문했다. 모르는 어휘가 나오면 동그라미 치고 사전을 찾아볼 것, 책에서 나오는 장소는 지도를 찾아서 반드시 공간을 확보할 것 두 가지였다. 아이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물론 내가 시간에 쫓기다 보니 자주는 읽지 못한다. 그래도 읽다 보니 거의 절반을 읽었다. 포기하지 않는 한 완독하게 될 것이고, 아이도 저 스스로 읽게 될 날이 올 것을 나는 믿는다. 

소심한 책방의 발전을 빈다.

책방 바로 옆에 있는 못에는 지금 오리 떼가 몰려와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소심한 책방은”

모든 것이 황량하게 느껴지는 계절에도 풍성함이 존재하는 곳이 있습니다. 추리소설을 읽으며 작가의 의도를 찾아가듯 돌고 돌아야 다다를 수 있는 곳, 전혀 소심하지 않은 소심한 책방으로 가 보세요. 지미봉이 겨울바람을 막아주고 나를 포근하게 감싸는 곳, 운이 좋으면 떼로 몰려드는 철새의 장관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찾아가는 길: 구좌읍 종달동길 36-10
인스타: www.instagram.com/sosimbook/  
트위터: www.sosimbook  
블로그: blog.naver.com/sosimbook  
영업시간: 월~금 10:00~19:00, 점심시간 12:00~13:00, 토~일 12:00~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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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9-14 제주, 일상, 아부오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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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심한책방, 종달리 가서 책도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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