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형태가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혼자 사는 것보다는 남녀가 결혼해서 아이를 낳고 사는 것이 정상적이고 안정적이라는 얘기를 많이 듣습니다. 가족은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가장 도움을 많이 주고 친밀합니다. 하지만 어떨 때는 가족 간에 가장 상처를 많이 받는 것 같기도 하고 힘들 때가 많습니다. 어떤 가족을 이루고 살아야 행복할까요? 그리고 가족 간의 관계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행복할까요?”
스님은 가족의 범위, 가족 개념의 변화에 따라 생겨나는 문제들, 그에 따라 미래에 새로 나타날 과제와 대안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어떤 가족 관계를 이루고 살면 행복할까 묻는 질문은 돈을 얼마나 가지면 행복할까 묻는 질문과 같습니다. 수행을 하면 혼자 살아도 행복하고 둘이 살아도 행복하고 다섯 명이 살아도 행복하고 열 명이 살아도 행복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관계를 갖는 게 더 좋다’ 이렇게 단정해서 말할 수가 없습니다. 옛날에 대가족을 이루고 살던 시대에 태어나 당시의 문화 속에서 자란 사람들은 소가족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은 보면 ‘왜 저러나’ 하겠죠.
가족의 규모는 산업화가 시작된 근대 초기에 대가족에서 소가족으로 바뀌기 시작해서 현대에 와서는 다시 소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바뀌었습니다. 핵가족은 부부와 그 자녀만 있는 것, 소가족은 거기에 할아버지와 할머니까지 있는 것, 대가족은 거기에 사촌까지 같이 사는 경우라고 말할 수 있겠죠.
그런데 요즘은 1인 가구가 빠르게 늘고 있습니다. 2020년 통계에서는 1인 가구가 30%라고 했는데, 2021년 통계에는 40%라고 합니다. 1년 만에 정말로 10%가 늘었는지, 통계 기관이나 표본 집단이 달라서 그런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만, 어쨌든 세상이 이만큼 1인 가구 시대로 빠르게 변해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디까지를 가족이라고 할 것인가?
가족의 범위를 정의하기란 참 어렵습니다. 가족을 생물학적으로 정의한다면, 부모가 미성년 자녀를 보호하고 있는 범위까지를 ‘가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녀가 성년이 되면 엄격하게는 가족이 아닙니다. 그런데 인간 사회에서 필요에 의해 인위적으로 가족의 범위가 확장되면서 대가족이 생겨난 거예요. 대가족은 자연스러운 가족의 구성이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대가족은 가족이라기보다는 공동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지금과 같은 가족 구성원의 변화가 특이한 상황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대한민국은 불과 100여 년 만에 봉건 잔재가 남아 있던 구한말에서 농경사회 말기를 지나 산업사회를 거쳐 정보화 사회에 이르렀습니다. 그 사이에 가족 관계도 많이 바뀔 수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나이가 70대 이상인 분들은 대가족을 경험했고, 50대와 60대의 대부분은 소가족을 경험했고, 최근에 20대와 30대는 핵가족을 경험했고, 지금은 여기에서 좀 더 나아가 ‘1인 시대’를 경험하고 있는 겁니다. 이처럼 가족의 개념을 구체적으로 따져보면 명확하게 규정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다시 말하면, 가족이란 해당 사회에서 규정하기 나름이라고 말할 수 있어요.
가족의 개념이 이렇게 바뀌어가고 있는 이유, 더 나아가 1인 시대로 변화해 나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혼자 살아도 별 불편이 없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혼자 살기가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음식은 대부분 매식하고, 청소는 청소기가 하고, 빨래는 대부분 세탁기가 합니다. 옷도 옛날처럼 직접 만들어 입는 게 아니잖아요. 일도 기계나 컴퓨터로 하기 때문에 육체적 힘이 필요한 게 아닙니다. 일의 성격이 많이 바뀌었고, 혼자서 의식주를 다 해결할 수 있게 되었어요. 그래서 남녀가 굳이 협업을 해야 될 필요성도 많이 떨어졌습니다. 다만 성적인 필요성은 아직 남아 있기에 남녀가 같이 사는 경우도 많을 뿐이에요. 그러나 남녀의 역할이 구분되지 않고 혼재가 되니까 갈등이 많이 생겨나게 됩니다. 그러다 보니 연애만 하고 결혼을 안 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어요. 굳이 결혼까지 하기에는 부담스럽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또 과거와 달리 요즘은 자녀를 너무 과잉보호하는 추세예요. 옛날에 아이 10명을 키우는 것보다 지금 아이 1명을 키우는 게 더 힘들다고 할 정도로 육아에 대해 느끼는 부담이 엄청나게 커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부는 ‘내가 살기도 바쁜데 아기를 어떻게 키우느냐?’라고 하기도 합니다. 옛날에 농사짓고 살 때는 아기를 낳기만 하면 그냥 알아서 큰다는 분위기였어요. 그러나 지금은 사회적인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습니다. 여러모로 아이를 보호하는 법규와 규정이 굉장히 많아졌어요. 이렇게 아기를 키우는 것에 대해 느끼는 부담이 커지다 보니, 결혼을 아예 안 하거나 결혼을 하더라도 아이는 안 가지겠다는 사람들이 갈수록 더 늘어나게 된 겁니다. 이런 추세대로 간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생각했던 가족 개념이 빠른 속도로 붕괴될 거예요.
또 이혼과 재혼을 하는 사람도 많아졌습니다. 전통적으로 결혼은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집안과 집안이 맺어지는 일이었기 때문에 이혼과 재혼을 하는 과정에서 가족관계가 굉장히 복잡해지고 있어요. 요즘은 부부가 한 번 결혼하면 죽을 때까지 같이 사는 경우보다 이혼한 후 재혼하는 경우가 더 많아졌습니다. 그 결과 시댁이니 친정이니 하는 개념도 점점 옅어지고 있어요.
가족 개념의 변화에 따라 생겨나는 문제들
이에 따라 국가가 가족 단위로 혜택을 주는 제도에도 새로운 문제가 생겨나고 있습니다. 동거하는 두 사람도 그냥 룸메이트가 아니라 부부처럼 경제적으로 이해관계를 맺고 있다면 가족에 해당하는 혜택을 줘야 하지 않느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어요. 남자끼리 살든, 여자끼리 살든, 남녀가 살든, 합법적 결혼이든, 사실상의 결혼이든, 동거 관계이든, 같이 산다면 가족에 해당하는 혜택을 누릴 수 있게 해 달라는 겁니다. 이미 캐나다에서는 이런 사회적 변화를 반영해서 두 사람 혹은 세 사람이 같이 살면 법적인 가족의 범위 안에 넣어서 주택을 구하거나 세금을 낼 때 여러 가지 혜택을 주는 쪽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도 전통적인 결혼 관계에 기반한 가족을 우대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다른 형태의 동거가 늘어날 것이기 때문에 이런 방향으로 사회 제도가 변화하게 될 거예요.
결혼도 안 하고 자식도 안 낳는 가족, 즉 성적인 문제 때문이 아니라 뜻이 같거나 이해관계 때문에 같이 사는 형태의 새로운 가족이 점점 늘어나는 데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혼자 살기엔 외롭고, 그렇다고 가족을 이루고 살기엔 너무 복잡하니까, 만나고 헤어지는 것이 비교적 쉬우면서도 뜻이 맞는 사람끼리 같이 사는 거예요. 이런 현상이 곳곳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정토회에서 활동하는 청년들도 크게 다르지 않아요. 두세 명이 집 하나를 구해서 같이 생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집값이 워낙 비싸서 혼자서는 도저히 구할 엄두가 안 나니까요. 그래서 세 명이 같이 집을 구하기도 하고, 네 명이 같이 집을 구하기도 해서 생활합니다.
정토회가 지금 출가해서 수행하는 공동체를 유지하는 이유도 이러한 사회 변화에 대해 새로운 대안을 제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직은 ‘출가’를 우선하다 보니 대중의 생활과 너무 구분되는 경향이 강해요. 그래서 정토회는 이런 사회 변화까지 고려해서 ‘제2공동체’라는 이름으로 어느 정도 개인 생활이 용인되는 공동체를 구성하고자 준비하고 있습니다. 제2공동체는 크게 두 가지 방식이 가능할 거예요. 첫째, 같은 뜻을 향해 활동하고 싶은 젊은이들이 어느 정도 개인 생활을 하면서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방식입니다. 둘째, 은퇴한 사람들이 일상의 절반은 개인생활을 하고 절반은 공동체 생활을 하는 방식입니다. 두 가지 방식을 모두 고려하고 있어요.
앞으로 점점 더 다양한 가족관계가 만들어질 겁니다. 결혼으로 맺어지지 않은 가족 관계가 점점 늘어나고, 전통적인 가족 개념은 줄어들 거예요. 그렇다 하더라도 아직은 전통적인 가족 개념이 더 우세한 편이라고 할 수 있죠. 사회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서는 가족의 개념이 어떻게 변하는 것이 바람직할까요? 이건 사회적인 선택의 문제라고 봅니다.
아이를 낳아 키우지 않으려는 시대, 대안은?
제일 큰 문제는 자녀의 양육, 즉 미래 세대를 우리가 어떻게 키울 것인가 하는 겁니다. 북한에서는 보육원에 아이를 모두 위탁을 해서 전문가들이 키웁니다. 이렇게 사회 제도적으로 대안을 제시할 수도 있겠죠. 그렇지 않으면 직접 낳아서 키우든 입양해서 키우든 자녀를 키우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혜택을 주는 방법도 있습니다. 현재 미국에서는 자기 부모라도 노인을 모시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혜택을 주고 있거든요. 집에서 노인 세 명만 모시면 회사 월급에 준하는 지원금이 나옵니다. 간호사 자격이 있는 사람이 집을 하나 구해서 노인을 세 사람 정도 모시면 집세, 생활비, 월급까지 다 나오는 셈이에요. 양로원이라는 시설을 마련해서 대규모로 노인을 부양하는 것이 아니라 각 가정으로 책임을 흩어 버리는 거죠.
고아가 된 아이들에 대해서도 비슷한 대안이 나오고 있어요. 지금까지는 고아원에 모아서 돌보다가 입양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본인 아이조차 안 키우려고 하니 앞으로 입양이 더욱더 어려워질 거예요. 그렇게 되면 이제 공동 육아를 하게 되거나, 아이를 키우는 사람에게는 특별한 혜택을 주게 될 가능성이 높아요. 친자식이든 아니든 아이를 두셋만 키우면 직장 다닐 필요 없이 월급에 준하는 지원금이 나오는 거죠. 나중에는 집에서 아이 키우는 것도 하나의 직업이 되는 제도가 곧 도입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10년 전부터 이렇게 강조했잖아요.
‘아이가 세 살이 될 때까지는 키우는 사람에게 유급 휴가를 줘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예산이 너무 많이 들지 않느냐’ 하고 반대하지만, 이미 일본에서는 이렇게 하기로 정부 방침이 정해졌어요. 저는 아이를 잘 키우는 게 미래 사회를 위한 가장 큰 투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문제는 앞으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질 겁니다.
그리고 자기가 낳든 입양을 하든 아이를 두셋만 키우면 그것 자체가 하나의 직업이 될 수 있는 사회가 빠른 시간 내에 오게 될 거예요. 어린이의 육성에 대한 대책이 없으면 우리 사회는 앞으로 큰 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아이의 수가 점점 줄어드는 것은 문제가 아니에요. 아이의 수가 많든 적든 양육을 잘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할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가족 개념이 바뀌면 이런 문제까지도 다 연달아서 나타날 거예요. 이것은 대한민국의 미래에 중요한 과제입니다.
가족 개념은 앞으로 계속 바뀌어나갈 수밖에 없어요. 여러분들은 이런 사회 변화를 미리 알아서 자녀들에게 조금 앞서가는 부모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고지식해서 말이 안 통하는 부모가 되지 말고요. 간섭하지는 않되 자녀의 의견을 존중하고 충분히 소통해서 관계를 잘 맺어나가는 지혜로운 부모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새벽 1시가 넘어서 서울에 도착한 스님은 잠시 눈을 붙였다가 서울 공동체 대중과 새벽 기도와 발우공양을 함께 했습니다.
아침 해가 뜨고 나서 오전 10시 정각에 1층 법당에 마련된 방송실에 자리했습니다. 오늘은 오전과 저녁에 두 번에 걸쳐서 전법활동가 법회를 하는 날입니다. 먼저 주간반 전법활동가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한 가운데 법회를 했습니다.
지난주 전법 활동가 법회에서 만일결사 회향기념으로 열리는 정토불교대학 강의안을 설명했고, 그에 대한 의견도 들어보았습니다. 그중에 질문도 몇 가지 나왔는데요. 오늘은 그 질문들에 답변한 후 추가적인 질문도 받았습니다.
특히 새로운 강의계획안에 대해 불교를 모르는 사람들도 이해하기 쉬울 것 같다는 반응이 많았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이 다시 한번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3월에 새로 시작하는 정토불교대학에서는 ‘사성제(四聖諦)란 무엇인가?’ 또는 ‘삼법인(三法印)이란 무엇인가?’ 이렇게 강의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지금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 ‘스트레스를 받으며 괴롭게 살고 있다.’
‘그럼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 ‘나는 괴로움 없이 살고 싶다.’
‘그런데 왜 괴로움이 생기는가?’ ‘이런 원인으로 괴로움이 생긴다.’
‘괴로움을 없애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렇게 살면 된다.’
이렇게 내 삶에 대한 질문에서부터 공부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그에 대한 답을 정리하면 곧 고집멸도(苦集滅道)이고 사성제(四聖諦)가 되는 거예요. 교리를 먼저 설명하는 방식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출발해서 그것이 어떻게 부처님의 가르침으로 연결되는지를 알려주고자 합니다.
어떻게 인생을 살 것인가
그러려면 먼저 괴로움과 즐거움이 되풀이되는 현실을 정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그리고 괴로움의 원인을 규명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 원인을 소멸시켜야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괴로움의 원인을 소멸시키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괴로움이 다시 생기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고집멸도(苦集滅道)를 생활 속에서 쉽게 설명하면 이렇게 설명할 수가 있다는 거예요. 이런 식으로 사유할 수 있게 되면 그게 바로 통찰력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수행자라고 할 수 있어요. 이번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하는 사람들은 이런 이치를 확실하게 터득하게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정토불교대학은 불교 신자에게 진짜 불교가 무엇인지 강의하는데 주안점을 두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 만일결사 회향기념으로 열리는 정토불교대학은 불교 신자가 아니라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강의예요. 그렇기 때문에 일반시민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일상생활을 주제로 강의를 시작해서 ‘이것이 바로 불교다’ 하고 알려주는 식으로 진행해 보려고 합니다.
과거에는 불교 교리를 먼저 해설하고, 그것을 일상생활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강의를 했어요. 그러나 지금까지 제가 해 온 즉문즉설은 그 반대로 진행해 왔잖아요. 일상의 문제를 먼저 살피고,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고, 필요하다면 관련되는 불교 교리를 설명했습니다. 이번에 새로 시작하는 정토불교대학에서도 즉문즉설과 같은 방식으로 강의를 하고자 하는 거예요. 교리를 먼저 이야기하는 연역적 방식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현재 내 삶에서 출발해서 내가 어떻게 하면 괴로움 없이 살 수 있는지를 설명하고, 마지막에 교리로 정리하는 방식으로 강의를 하려고 해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좋은 법을
이렇게 정토불교대학의 전 과목을 새롭게 강의해 보려고 합니다. 첫 번째 과목인 ‘실천적 불교사상’에서는 일상생활에서 출발해서 삼귀의(三歸依),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을 배웁니다. 두 번째 과목인 ‘부처님의 일생’에서는 이 길을 열어주신 부처님께서는 어떤 일생을 살았는지 살펴봅니다. 부처님이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고, 어떤 교육을 받았으며, 어떻게 성장했고, 어떤 고뇌를 했으며, 그 고뇌를 해결하기 위해 무엇을 하였는지 살펴보는 겁니다. 출가해서는 어떤 수행을 하였고, 새롭게 발견한 길은 무엇인지, 어떤 과정을 거쳐 깨달음을 얻었는지 세세하게 살펴보는 거예요. 또 과거의 부처님을 살펴보는데 그치지 않고, 현재의 관점에서 ‘지금 나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하고 살펴봅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후 대중과 만나서 교화하시는 과정을 중심으로 평생의 여정을 살펴보면서, 오늘의 관점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지, 지금 우리 시대에 부처님이 오신다면 어떤 모습이겠는지, 이런 관점에서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하게 될 거예요.
그리고 학생들은 강의를 듣고 배운 것을 토대로 도반들과 마음 나누기하면서 스스로 이치를 체화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제가 20년 전에 했던 강의와 근본 내용은 같지만 전개 방식은 이렇게 달라지는 거예요.
2차 만일결사 기간에 정토회가 주력해야 할 전법 대상은 외국인과 불교를 잘 모르는 젊은이들입니다. 새롭게 진행하는 정토불교대학에서는 그들도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강의를 준비하려고 해요.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좋은 법을 알기 쉽게 전해서 그들도 함께 행복해지도록 돕자는 원대한 계획입니다. (웃음)
전법활동가, 실천활동가, 일반회원
정토회 회원 중에서 전법활동가는 온라인으로 전법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실천활동가는 으뜸절과 지역에서 실천 활동을 주도적으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전법에 관계되는 사업은 전법활동가 총회에서 결정하고, 으뜸절의 운영은 실천활동가들이 결정할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실천활동가는 으뜸절 활동과 지역 활동을 합니다. 으뜸절에서의 실천 활동은 실천활동가가 중심이 되고, 지역에서의 실천은 행복시민이 주도하게 됩니다. 두 가지를 다 하는 회원도 생기겠지만 기본 틀은 이렇게 진행될 예정입니다.
그에 반해 전법활동가도 아니고 실천활동가도 아닌 정토회의 일반회원에게는 의무는 없습니다. 본인의 형편에 따라 보시하고, 봉사하고, 법회를 들으면 돼요. 정토회의 발전이나 전법을 위해 작은 책임이라도 지는 사람들이 전법활동가, 실천활동가, 행복시민입니다. 이렇게 조직의 구심을 잡으면서 폭도 넓히는 방향으로 운영해 가려고 합니다. 온라인에서는 온라인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해서 전법과 교육 및 수련을 해나가되 오프라인에서는 주로 실천 활동과 수행 체험을 해나가는 겁니다. 한마디로 오프라인의 장점과 온라인의 장점을 적극적으로 결합하는 거예요.
여러분도 각자가 가진 시간, 기술, 재능, 원(願)의 정도에 맞게 실천활동가를 하거나 전법활동가를 하거나 일반 회원을 하면 돼요. 미래는 맞춤형 사회입니다. 그래서 정토회도 회원 개개인에게 맞게 맞춤형으로 운영해 나가려고 해요. 그러니 변화를 너무 두려워하지도 말고, 또 지나치게 욕심내지도 말아야 해요.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어 하다가 지치지 말고, 무엇이든 꾸준히 해나갔으면 합니다.”
이어서 즉석에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전법활동가들의 다양한 질문과 건의를 받은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생방송이 끝나고 스님은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이동해 찾아온 손님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며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불교계 언론 특별대담 촬영
오후 1시에는 정토회관 1층 법당에서 BBS, BTN, 법보신문 공동주관으로 정토회 만일결사 회향기념 <법륜스님 특별 대담> 촬영이 있었습니다. 정토회 30년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코로나19대유행 이후 한국사회와 불교가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오늘 촬영에는 BBS, BTN, 법보신문에서 온 기자들이 참가했습니다. 사회는 방송인 김병조 씨가 맡았습니다. 2시가 되자, 김병조 씨의 활기찬 인사와 함께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오늘은 수행공동체 ‘정토회’ 지도법사이자 대한민국의 국민 멘토, 무엇보다 즉문즉설로 유명하신 법륜스님을 모시고 설맞이 특별대담을 마련했습니다.”
가벼운 인사를 나눈 후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오늘 대담의 주제는 아주 특별합니다. 법륜스님께서는 30년 전, 만일 결사를 시작하셨습니다. 1만 일이면 30년, 약 24만 시간이라는 긴 시간입니다. 스님께서 ‘정토회 만일 결사’를 시작하시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었는지요?”
만일결사를 시작하게 된 배경
“만일결사는 지금부터 30년 전에 시작했습니다. 그 당시에는 불교계가 사회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던 시기였습니다. 종단 내에 분쟁이 생기고,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민중의 편에 서기보다 독재 정부 편에 서기도 했어요. 그래서 불교에 대한 이미지가 많이 안 좋았습니다. 당시 젊은 세대였던 저희는 종단에 대해서, 또 기성의 불교에 대해서 매우 비판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마냥 비판한다고 해서 이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지금부터라도 우리가 새롭게 시작해 보자. 우리가 주체가 되어 변화를 일구어 보자.’
이런 마음으로 정토회 만일결사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불가에서는 ‘1백 일을 정진하면 자기 모습을 알 수 있고, 1천 일을 정진하면 자기 변화를 이룰 수 있고, 1만 일을 정진하면 사회 변화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래서 ‘1만 일을 목표로 지금부터 정진하고 전법을 한다면 불교가 국민들과 불자들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 이런 뜻으로 만일결사를 시작했어요. 당시에는 30년이 까마득하게 멀어 보였는데 지나고 보니까 별로 한 것도 없이 벌써 30년이란 세월이 지났네요.” (모두 웃음)
이어서 정토회 만일결사의 내용과 수행법, 만일결사의 의미, 성과, 과제,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와 대중들에게 감동받은 일화, 코로나 이후 향후 30년의 사회 전망과 2차 만일결사의 방향, 온라인정토회 전환 배경과 전법 활동, 비대면 시대에 한국 불교의 새로운 역할 등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스님은 담담한 어조로 지난 30년을 돌아보며 이야기했습니다.
지난 30년,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이 질문을 빼고 갈 수 없어 질문드립니다. 30년 만일결사의 과정이 결코 순탄치만은 않았을 텐데요. 스님께서 가장 힘들었던 시절과 일화를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어떤 사람의 마음이 청정하면 그 사람이 수행자다. 법담을 나누면 그 장소가 가정집이든, 식당이든, 사무실이든, 설령 교회라 하더라도 그곳이 곧 도량이다.’
저는 서암스님의 가르침으로 장소가 있어야 한다거나 스님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게 됐습니다. 그전에는 늘 뭐라도 하려면 ‘사람이 있어야 한다’, ‘공간이 있어야 한다’ 이런 얘기를 했지만, 사실은 아무것도 없어도 전법을 할 수 있었어요.
‘누구든지 부처님 법에 동의하고 또 그것을 실천하려는 사람이라면 함께할 수 있다. 모양과 형식에 구애될 필요가 없다’ 이런 생각으로 정토회를 시작했는데, 여기에 이른바 재가 수행자들이 많이 동참하다 보니까 정토회가 재가 수행자 중심 단체가 되었을 따름이에요. (웃음) 출발할 때 저희는 재가니 출가니, 재가 중심이니 출가 중심이니 하는 생각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모양과 형상, 이름에 관계없이 누구든지 뜻이 맞으면 함께하자’ 이런 관점에서 출발해서 여기까지 오게 됐어요.
시작을 이렇게 했기 때문에 특별히 어렵다 할 것도 없었습니다. 법회도 어디서든지 할 수 있었습니다. 나무 아래에서 해도 되고, 외국이라면 교회에서 해도 되고, 가정집에서 해도 되고, 사무실에서 해도 돼요. 누구든지 마음이 동하는 사람은 법회를 들으면 되니까요. 그렇기 때문에 바깥에서 볼 때는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었다고도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저는 특별히 어렵다고 느낄 만한 일은 없었습니다.
다만 중간에 고민이 조금 된 일은 있었어요. 조그마한 법당을 하나 마련하려고 어렵사리 모금을 해놓고 땅도 구입해서 드디어 건축을 시작하려는데, 북한에서 사람들이 굶어 죽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래서 제가 의견을 내었습니다.
‘이 불사를 중단하고 굶어 죽는 사람부터 먼저 구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불사를 위해 열심히 노력했던 회원들이 반대했어요.
‘어렵게 어렵게 힘을 모은 불사가 겨우 성사될 참입니다. 이 불사를 지금 하지 않으면 영원히 못 하게 됩니다. 불사를 예정대로 진행해야 합니다.’
정토회는 대중의 뜻을 따르는 조직인데, 대중 전체가 반대하는 상황이었죠.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좀 망설이다가 제가 이렇게 강경한 자세를 취했어요.
‘그러면 대중은 그렇게 하고, 저 혼자 나가서 북한 동포 돕기를 하겠습니다. 이 일을 허락해주지 않는다면 제가 정토회에서 탈퇴하겠습니다.’ (모두 웃음)
이렇게 해서 겨우 타협을 봤어요. 정토회는 정토회대로 가고, 저는 나가서 북한 돕기를 하도록 좀 양해를 해달라고 한 거죠. 그래서 ‘혼자 가면 어려울 테니까 한 명 더 데려가십시오’ 이렇게 약간의 지원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북한 동포 돕기를 시작했을 때가 굳이 어렵다면 조금 어려운 시기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그러나 1년도 채 지나지 않아 대중들이 다 이해를 해주어서, 북한 동포 돕기에 정토회 전체가 동참하게 됐습니다. 그게 30년 동안에 제가 대중들과 말하자면 서로 갈라설 뻔한 유일한 일이었어요. (웃음) 땅을 구입할 때 큰돈을 보시했던 몇몇 분들이 그때 실망을 하고 정토회를 떠나서 좀 어려움이 있기도 했습니다.”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얼마나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습니까? 특히 스님 말씀 중에서 ‘마음이 청정한 자가 수행자다’라는 말씀이 불자들에게 큰 가르침이 되는 것 같습니다. 정토회 대중 활동가들에게 스님께서 감동받은 일화가 있다면 좀 들려주시죠.”
“기억에 남은 일은 많지만, 지금 금방 떠오른 한 가지를 말씀드릴게요. 만일결사에 참여해서 같이 정진하다가 중간에 암이 걸려 돌아가실 형편이 된 분이 인사를 왔어요.
‘스님을 뵙는 게 오늘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제가 농담 삼아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안 돼요. 우리가 만일결사를 했으면 약속을 지켜서 1만 일까지 하고 죽어야죠. 왜 1만 일이 되기도 전에 죽는다는 소릴 해요? 그건 약속 위반입니다.’
‘저도 약속을 지키고 싶어요. 그렇지만 몸이 이런 걸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알았어요. 몸은 어쩔 수 없지만, 일단 1만 일이라는 약속을 했으니까 기도비는 1만 일 몫까지 내놓고 죽어야 하지 않을까요?’ (모두 웃음)
이렇게 얘기를 했더니 그분이 정말로 기도비를 1만 일까지 미리 선납하고 운명하셨어요. 이 이야기를 잘못 들으면 ‘스님이 돈 밝힌다’ 이렇게 들을 수도 있겠지만 (모두 웃음) 그런 뜻이 아니라, 자신의 약속에 대해 세속적으로 표현하자면 의리가 있다는 이야기예요. 우리가 한 약속에 대해서 그 정도로 마음을 다한다는 겁니다. 몸은 살아서 1만 일까지 간다는 약속을 못 하더라도 내가 할 수 있는 다른 약속은 이행하겠다는 거예요. 이런 분들을 보면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적이죠.
또 자기도 못 살겠다고 울고불고하던 분들이 자기 고통을 극복하고 나서 그래도 지구 환경을 생각하고, 인도나 북한의 어린아이들을 돕는 것도 생각을 하고, 나라를 생각해서 평화운동도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중생에게는 다 부처가 될 성품이 있다’라고 하신 부처님 말씀이 더욱 와닿있습니다.”
“네, 감동입니다.”
지난 30년 동안 정토회는 정말 다양한 사회활동을 전개해 왔습니다. 사회자는 정토회가 왜 사회활동을 하는지 콕 집어 물었습니다.
정토회는 왜 사회 활동을 하나요?
“정토회 하면 북한동포돕기 거리모금, 인도적 지원을 위한 100만 인 서명운동, 발우공양의 정신을 살린 빈그릇 운동, 천일통일정진 등 다양한 사회실천활동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웬만한 시민사회단체를 능가할 정도로 환경, 복지, 평화 분야에서 활동을 해온 셈입니다. 이런 활동들을 주도한 분들이 모두 재가수행자들이라고 하는데요. 불교는 아직도 ‘산속의 불교’ 이미지가 강한 편인데 어떻게 정토회는 이런 사회활동을 할 수 있었는지 궁금합니다.”
스님은 아주 가볍게 대답했습니다.
“스님이 왜 환경운동을 하느냐, 스님이 왜 평화 운동을 하느냐, 이런 질문을 하는 분들이 가끔 있습니다. 저도 숨을 쉬어야 하고, 물을 마셔야 하고, 음식을 먹어야 하잖아요. 또 전쟁이 나면 저도 총 맞으면 죽고, 폭탄이 떨어지면 다칩니다. 스님이라고 특별히 숨 안 쉬어도 살고 물을 안 마셔도 사는 건 아니잖습니까? (웃음)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공기도 깨끗해야 하고, 물도 깨끗해야 하고, 음식도 청정해야 하고, 또 전쟁 없이 평화로워야 해요. 물론 저부터 행동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중들에게 늘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저는 자식이 없으니 제 삶만 살고 죽으면 그만이지만 여러분은 자녀들이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의 자녀들이 살아갈 미래의 세상이 오염된다면 재물을 물려준들 뭐하겠어요? 깨끗한 환경을 물려주는 게 진짜 큰 유산 아닐까요? 또 이렇게 걸핏하면 전쟁 난다고 하는 세상을 물려주는 게 낫겠어요, 아니면 평화로운 세상을 물려주는 게 낫겠어요? 유럽에 가보면 젊은이들이 평화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우린 늘 남북한이 대치하는 상황 속에 살고 군대에도 가야 해요. 꼭 이렇게 누군가를 미워하고 살아야만 할까요? 우리 세대까지 그렇게 사는 건 괜찮지만, 그걸 자식들에게까지 물려줄 이유가 뭐가 있어요? 그러니 우리 민족사 바로 알기 운동, 한반도 평화 지켜내기 운동, 환경 깨끗하게 하기 운동은 저보다 여러분이 해야 할 일입니다. 여러분은 자녀가 있기 때문이에요. 그런데 이걸 왜 저더러 하라고 해요? 물론 저도 하지만, 오히려 이건 여러분이 직접 해야 할 일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저는 대중들이 자기 수행뿐만 아니라 사회 변화를 위한 활동을 마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중들도 이에 공감했기 때문에 참여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자기 인생을 사는 것조차 버거운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부 갈등 때문에, 자식 때문에, 이런저런 일 때문에 힘든 일상이에요. 부처님 가르침에 따라 수행 정진하면 자기를 괴롭히는 데 쓰는 에너지를 줄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남는 에너지를 자기 괴롭히는 데 쓰지 말고 세상을 이롭게 하는 데 좀 쓰면 보람이 있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저는 불법을 공부한 대중들이 마땅히 남을 도울 줄도 알고, 보시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즘은 뭐든지 자기 재능을 돈 받고 팔아요. 이런 시대 속에서도 세상에 필요한 게 있으면 좀 봉사할 줄도 알고, 자기를 아름답게 가꿀 줄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수행, 보시, 봉사가 대중들에게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세상을 위한 봉사를 하더라도 항상 수행을 기초로 해야 합니다. 자기를 괴롭히는 데 에너지를 쓰면 다른 데 관심을 가질 에너지가 없어요. 자기 괴롭히는 데 에너지를 안 써야 남은 에너지를 남을 위해서 에너지를 쓸 수 있습니다. 그런 관점에서 정토회는 사회 활동보다 수행을 기초로 하는 단체입니다. 우선 수행을 통해 개인이 행복하고 자유로워진 뒤에 그래도 조금 힘이 남으면 이웃과 세상에 좀 보탬이 되는 사람이 되자는 거죠. 세상을 둘러보면 환경 운동도 필요하고, 어려운 사람도 도와야 하고, 내가 사는 땅을 평화롭게 지켜야 하니까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사회자는 홈페이지에 매일 연재되는 ‘스님의 하루’를 언급하며 스님의 체력 관리 비법에 대해서도 질문했습니다.
강철 체력의 비법은?
“정토회 홈페이지에 소개되는 ‘스님의 하루’를 보면, 매일같이 직접 농사짓는 모습을 뵐 수 있는데요. 스님이 강조하시는 수행과 수행법이 매우 궁금합니다. 24시간이 모지랄 정도로 바쁘신데. 힘든 농사일과 즉문즉설 등을 종일 진행하시는 법륜스님의 강철 체력은 혹시 스님의 수행법에서 나오는 것인지요?”
“저희 스승님이신 서암 큰스님께서 어떤 기자가 건강의 비결이 뭐냐는 질문을 받고 ‘나는 건강이라는 걸 생각해 본 적이 없소’ 이렇게 말씀하시는 걸 제가 들었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몸이 건강한 편이 아니었습니다. 늘 병치레를 하는 약골이었습니다. 멀리 떨어져서들 보니까 그렇게 많은 일을 해 보이는 것처럼 보이나 봐요. 그래도 다 살 만하니까 이렇게 살지 않겠습니까? (웃음)
저는 지금도 체력이 남보다 특별히 좋다고 할 건 없어요. 아프면 약을 먹어요. 감기 걸리면 감기약 먹고, 심장약도 먹고, 가끔 병원에도 갑니다. 굳이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면 아픈 것에 대해서 별로 걱정을 안 한다는 점일 거예요.
사람들이 저더러 잠을 적게 잔다고들 하지만 잠은 다 잡니다. 다만 잠자는 시간이 정해진 것은 아니어서 12시에도 자고 1시에도 자요.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스님은 두세 시간만 잔다’ 이렇게 말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차를 타고 이동하면서 잠깐씩 나누어서 잠을 자다 보니까 잠을 안 잔다는 말이 생긴 것 같아요. 그렇지만 사람이 자지 않고 어떻게 살겠어요? 잘 만큼은 다 자고 있습니다.”
“거의 매일 농사를 지으시던데, 농사 얘기도 좀 소개해 주시죠.”
“농사는 그냥 운동 삼아합니다. 이것도 스승님들의 가르침을 따르는 거예요. 선방에서 스님들이 아령이며 역기를 들고 운동을 하노라면 스승님께서 이러셨거든요.
‘이놈들아, 왜 밥 먹고 힘을 그리 엉뚱한 데 빼고 있느냐? 그럴 힘이 있으면 호미 들고 밭에 가서 밭이나 매라!’
그 당시에는 스승님이 조금 고지식하다고만 생각했는데, 나중에 보니 정말로 그래요. 똑같은 에너지를 그렇게 쓸 게 뭐 있어요? 그래서 저는 운동을 대신해서 농사를 짓습니다. 그리고 놀려고 해도 어차피 몸을 움직여야 하잖아요. 운동을 하려고 해도 움직여야 하고요. 그래서 놀이 삼아, 또 운동 삼아 이렇게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일이 아니라 수행이고, 일이 아니라 놀이라는 말씀이시군요.” (모두 웃음)
이 외에도 해외 포교 역사, 정토불교대학 1만 명 모집 이유와 기존 정토불교대학과의 차별점, 4차 산업혁명으로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이 유용한 이유, 대선을 바라보는 관점에 대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사회자가 준비한 질문 외에도 기자들도 질문을 했습니다.
코로나 시국이 계속되는 가운데 전 사회적으로 디지털 전환이 빠르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비대면으로 이뤄지는 사회에서 앞으로의 수행 및 교육 방향은 어떠할까요?
요즘 한국불교를 보면 ‘수행’ 보다는 ‘갈등’ 이 먼저 떠오르는 현실인데요. 지금 같은 시대에 한국불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무엇일까요?
현재 몇 개국에서 몇 명이 만일결사에 참여하고 있으며, 만일결사에 대한 외국인들의 반응은 어떠한가요?
꼼짝 않고 촬영을 하는 사이 2시간이 흘렀습니다. 사회자는 마지막으로 마무리 말씀을 요청했습니다.
“스님, 이제 시간이 다 되어갑니다. 마무리하기 전에 우리 불자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신지요? 마무리 말씀 부탁드립니다.”
살아있는 감사함, 긍정 위에 비판
“무엇보다 먼저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만큼 안 돼서 불만일 뿐이지, 이 세상은 그래도 살 만한 세상입니다. 나와 같이 사는 남편, 아내, 부모, 자식이 내가 원하는 만큼의 기대에 못 미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 사람들은 좋은 사람들이에요. 내가 원하는 것이 안 이루어져서 서운한 건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이 안 됐다고 해서 나쁜 사람, 나쁜 나라, 나쁜 사회인 것은 아니에요.
긍정적인 눈을 가지고 세상을 보되, ‘그래도 개선해야 할 점이 있다’ 이렇게 비판적인 눈을 갖추어야 합니다. 긍정 위에 비판이 있어야 개선을 할 수 있어요. 부정 위에 비판을 하면 파괴하는 방향으로 가게 돼요. 긍정 위에 비판이 없으면 안주하게 됩니다. 그래서 큰 틀에서는 나의 삶, 타인, 사회, 국가, 세상에 대해서 긍정적이되, 조금이라도 개선을 해나가려면 모순을 보는 비판적 인식을 함께 갖춰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가 현실 가능한 개선책을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방송이 끝나고 카메라가 꺼지자 스님은 기자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건네고 책에 사인을 해서 한 권씩 선물로 드렸습니다.
“수고했어요.”
방송을 준비한 정토회 실무자들에게도 수고했다는 인사를 건넸습니다. 곧이어 손님이 찾아와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오늘 스님의 하루에서는 일부 내용만 공개했습니다. 전체 방송은 1월 31일~2월 3일 설특집으로 BBS, BTN, 법보신문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저녁반 전법활동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오전 법회와 마찬가지로 지난주에 전법활동가들이 제출한 여러 가지 의견들에 대해 답변을 한 후 즉석에서 다양한 제안과 건의를 받았습니다.
불교대학 졸업을 한 달 여 앞두고 대부분의 학생들이 수업은 좋다고 느끼는데 수행연습 참여율이 현저히 낮아 고민입니다. 필요한 때가 되면 자연스럽게 할 것이라고 기다리는 마음이 들다가도, 계속 권하는 마음이 듭니다. 진행자인 저는 어떻게 안내하면 좋을까요?
전법활동가 법회 중 월 1회는 모둠 회의를 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각자의 소임에 따른 활동이 있어 따로 모둠회의를 잡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미리 각자 법문을 듣고, 모둠 회의를 넉넉하게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여러 가지 제안을 경청한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법회 후 스님은 곧바로 9시부터 정토회관을 찾아온 손님과 밤늦게까지 미팅을 하고 하루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북한 전문가들과 조찬 모임을 하고, 오전 내내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하고, 오후 1시에는 ‘기후 위기’를 주제로 평화재단 연구원 분들과 세미나를 한 후 저녁에는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회의를 하고, 밤늦게까지 손님들과 미팅을 연이어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