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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는
세상에서 가장 얕은 물인 것 같다.
책장을 넘길 때처럼 그림을 그리면서도
찰랑거리는 종이에서 헤엄치는 상상을 한다.
종이 앞에서는 설렘과 비슷한 두려움도 있다.
그림을 그리고 나면 종이가 살짝 묵직해져
조금 더 깊은 물이 된다. 두려웠던 마음은
어느새 포근하고 따뜻한 표현으로
가득 차 몽글해진다.


- 필몽(최은진)의《붓의 기분》중에서-


* 지금은 먹물이 시판되고 있지만
예전에는 벼루에 물을 넣고 먹을 갈아야
먹물을 만들 수 있었습니다. 벼루에서 맑은 물이
점점 먹색을 띠며 걸쭉해지는 농도를 가늠하며
붓을 적셔 화선지에 옮겼었지요. 그 순간의 설렘과
두려움, 황홀한 긴장감은 그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붓의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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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황홀한 꽃들이여!

 

아~ 저 작은 꽃나무들은
과연 누굴 위해서, 뭘 위해서 이 새벽에
꽃을 피우고 있다는 말인가? 잠이 덜 깬
제 눈에 너무 처절하게 피어 있는 손톱보다
작은 앙증맞은 꽃들이 들어옵니다. 동트기 전 새벽,
이 새벽에 너희들을 나만 볼 수 있는 그 독점적
황홀함이여! 아~ 너무 황홀한 꽃들이여!
그들의 삶에 가슴이 숙연하게
가라앉습니다.


- 윤창중의 《남자라는 이유로》 중에서 -


* 꽃나무들은 삶의 절정일 때
꽃을 피웁니다. 가장 황홀한 모습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냅니다. 봄이면 싹이 나고,
여름이면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씨앗을 퍼뜨리며,
겨울이면 숙연하게 기다리며 다시 화려하게
피어날 꽃을 준비합니다. 자연은 스스로
그러하게 존재하는 황홀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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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핀 바로
그 자리에 열매가 열리듯,
지는 꽃잎에 황홀한 외로움 스며와도
나는 여기 이 자리에 그대로 있어야겠다.
내가 꽃잎으로 지는 날 올 때까지는 지금 있는
이곳에서 오래도록 흔들리고 그리워하며
하루하루를 오붓하게
살아낼 것이다.


- 공상균의 《바람이 수를 놓는 마당에 시를 걸었다》 중에서 -


* 아무리 아름다운 꽃도
철 따라 언젠가는 질 것입니다. 그러나
피어있는 동안 햇살과 바람과 이슬과 만나며
눈부신 빛깔과 향기로 모두를 기쁘게 할 것입니다.
그러다 어느 날, 꽃이 핀 그 자리에서
튼실한 열매가 자라날 것입니다.
꽃은 그걸로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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