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씨년스런 하늘에 쌀쌀한 기운, 제법 겨울 날씨답다. 겨울 무 수확 철이라는 걸 알리듯 간혹 휘어진 길엔 트럭에서 쏟아진 무가 뒹굴고 있다. 그런가 하면 노랗게 핀 배추꽃이 계절을 의심하게도 한다. 책방을 찾아가는 동안 난 잠시 추리소설 속 인물이 되어 사건의 클라이맥스 한 부분으로 들어서는 것도 같았다. 책방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한 허허벌판에 덩그러니 서 있는 길로 안내하는 내비 속에 찍힌 ‘수상한 소금밭’이라는 이름 때문이다. 길을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내비를 설정했다. 그래도 마찬가지다. 이상하다 여기면서 따라갔더니 갈대밭 한가운데 책방이 있다. ‘수상한 소금밭’은 남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였다. 한창 푸르름을 자랑하면서 하늘거리던 갈대도 갈색이 된 지금, 그 황량함을 메워줄 철새가 찾아드는 때다. 책방 가까이 있는 못에는 오리 떼들이 몰려와 있었다.
마을 책방을 찾아다니면서 제일 가고 싶었던 곳이 소심한 책방이다. 제주도 내 마을 책방을 활성화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 곳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미 직원과 한번 통화를 했었다. 책방 대표로부터 이사해서 정신없으니 나중에 하자는 문자를 받았다. 왠지는 모른다. 문자에서 묻어나는 느낌은 지긋이 저음인 중년 남성의 목소리였다.
취재를 완곡한 표현으로 거절하는 것일까? 나로서는 알 수 없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다시 전화했다. 통화의 상대는 문자에서 느꼈던 인물이 아닌 앳된 여학생 같았다. 그 사이 책방을 딸에게 물려주기라도 했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찾아갔다. 지미봉이 바닷바람을 막아주듯 포근하게 감싸고 있는 곳이다.
통화의 주인공은 책방지기 현미라 씨였다. 통화에서 느꼈던 목소리와 마찬가지로 외모도 청순가련한 여고생 이미지였다. 나이 마흔이라는데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고향이 경상도인 책방지기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2012년에 제주로 내려왔다. 그리고 게스트하우스를 하다가 2014년 5월, 서울에 사는 친구와 함께 책방을 오픈했다.
처음부터 제주로 와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아니다. 현미라 씨는 20대 초반부터 섬진강 근처에서 주막집을 하고 싶다는 동경을 지니고 있었다. 재첩도 잡으면서 아카시아 술을 담그고, 즉석에서 부침개도 부쳐서 팔고 싶었다. 그래서 말의 씨앗을 뿌리듯 자신의 심중을 떠벌리다시피 하고 다녔다. 남편을 만났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결혼 전 남편은 이런 생활을 동경하는 그에게 그렇게 살면 너무 재밌겠다면서 호응해줬다. 그렇게 자기 생각을 지지해 주는 남편과 결혼했다. 그런데 막상 결혼하고 보니 현실은 달랐다. 꿈은 이상이었을 뿐이었다,
지금 구좌읍엔 겨울 무 수확이 한창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깜짝 이벤트에서 맺은 인연, 제주도”
현미라 씨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고, 남편은 카페 혹은 맥주펍 자리를 알아보고 있었다. 어딜 가나 그렇지만 권리금이며 임대료 등 모든 게 비쌌다. 섣불리 덤빌 수 없는 상황, 정신적으로 방황할 수밖에 없었다. 차라리 여행이나 가자고 했다. 현미라 씨는 한 달여 동안 네팔과 티베트로 떠났다. 해외에서 들어올 때 남편은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 있었다. 현미라 씨는 남편을 위한 깜짝 이벤트로 연락도 없이 제주도로 왔다.
안나푸르나 트래킹은 일주일이나 열흘이 보통이다. 제주에서 남편을 만난 현미라 씨는 때에 따라 카페도 식당도 숙소도 되는 롯지를 안나푸르나에서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은 아니라고 했다. 절충점을 찾던 중 제주에서 지내면 어떨까 하는 의견이 오갔다. 부부는 다시 제주도 여행을 하게 되었고, 여행하다 보니 제주에서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은 확신이 들었다. 그렇게 제주도에서 살기로 하고 바로 내려왔다.
그런데 왜 하필 종달리였을까.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서울로 올라간 뒤 책방지기는 하던 일을 계속해야 했다. 남편은 제주도로 내려와서 정착할 곳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가진 돈도 없고, 쉽지 않았다. 어느 날 근무 중 제주도에 있는 남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종달리란 곳인데 사방이 갈대밭이고 아무것도 없다. 멀리 성산일출봉이 보이는데 땅값은 여기가 제일 싸다.”
남편이 고른 곳이다. 계약하고 보자고 했다. 한마디로 종달리로 오게 된 건 다른 곳보다 땅값이 쌌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미라 씨는 완전히 이주할 때야 자신들이 정착할 땅을 처음 보게 되었다.
수확한 무를 싣고 가는 트럭이 버거워 보인다. 사람은 자신이 살기 위해 허리가 휘지만, 트럭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적재함이 휘고, 바퀴가 절뚝거린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까레이스끼 끝없는 방랑”
만삭의 몸을 이끌고 제주로 온 책방지기의 눈앞엔 갈대만 흔들리는, 보이는 건 오로지 허허벌판이었다. 왜였을까, 나도 모르게 문영숙의 “까레이스키 끝없는 방랑(출판 푸른책들)”이 떠올랐다.
이야기의 서술자인 동화네는 까레이스키 가족이다. 이유도 없이 소련 사람들에게 잡혀간 아버지는 어디에 있는지조차 모른다. 게다가 어머니는 만삭이다. 소련의 강제 이주 정책에 따라 추수를 앞둔 벼마저 그대로 두고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올라야 했다. 화장실도 없는 가축 운반용 화물차였다. 언제 올지 모르는 아버지를 두고 떠난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다. 떠나는 건 선택이 아니라 강제다. 해산바라지할 짐도 허용하지 않았다. 모두 일본이 첩자를 키워 소련과 까레이스키를 이간시켰기 때문이다.
추위와 굶주림 속에서 까무러치기를 몇 번, 엄마는 화물차 안에서 아기를 낳았다. 그러나 아기는 울지 않았다. 엄마도 일어나지 못했다. 이 외에도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내무인민위원들은 시체를 끌어내고 눈 속에 던져버렸다. 같은 열차 칸에 탔던 함흥댁의 아기도 죽었다. 죽은 아기가 어디 함흥댁 아기뿐이랴마는, 실성한 함흥댁은 죽은 아기를 업고 다니며 자장가를 불렀다. 열차 안에는 봉오동 전투를 승리로 이끈 홍범도 장군도 있었지만,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처지였다. 그는 나중에 크질오르다에 있는 극장 청소부로 보내어지고 여섯 해를 살다가 75살에 돌아가셨다.
40여 일을 달려 도착한 곳은 나무 한 그루 없는 카자흐스탄의 허허벌판 우슈토베 지방이었다. 이곳에서 까레이스키들은 맨손으로 땅을 파며 잠잘 곳을 마련했다. 추위와 굶주림, 늑대와 질병에 맞서 싸웠다. 이곳에서 동화는 남은 가족인 오빠와 할아버지도 잃었다. 그래도 까레이스키들은 불굴의 의지와 타고난 성실함으로 땅의 염분을 씻어내는 등 척박한 땅을 일구고 서서히 사람다운 삶을 되찾아 간다. 그런데 유럽의 이주민이 유입되며 정착지에는 새로운 긴장감이 감돌고, 까레이스키들의 놀라운 농사 기술과 노동력을 이용하려는 소련은 집단 농장 제도를 강요하며 위협한다. 동화는 아버지의 소식을 찾기 위해 유랑 극단을 쫓아 러시아 전역을 여행하기도 하고, 노력 영웅이 되기 위해 고된 노동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러나 동화 앞에 도착한 건 아버지의 사망 통지서다. 소련 해체와 동시에 정착지에서 쫓겨난 까레이스키들은 러시아 전역으로 뿔뿔이 흩어진다. 까레이스키란 조선 후기 이래 러시아로 이주한 한인의 후손을 가리키는 말로 고려인이라고도 부른다.
소심한 책방 내부다. 책방은 이름과 달리 넓고 정갈하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갈대밭”
책방 근처는 아닌 게 아니라 온통 갈대밭이다. 그 갈대밭을 보며 허허벌판 우슈토베 지방에 도착했던 까레이스키들을 떠올렸고, 만삭이었던 현미라 씨를 생각하며 동화의 엄마를 떠올렸다. 처음 이곳에 이주했을 때 얼마나 황당했을까에 생각이 미치다 보니 그랬다.
책방 가까이엔 못이 하나 있는 데 오리 떼가 몰려와 있었다. 근처 갈대밭은 원래 개인 소유가 아니고 산 번지인 뻘밭이었다. 마지막에 논을 없애면서 개인에게 분양하겠다고 했을 때, 그곳에서 경작하던 사람들이 분양을 받은 곳은 메우고 개간했지만, 지미봉 중심으로는 개인에게 분양이 안 됐다고 한다. 어떤 이유였는지는 모른다. 땅값이 이렇게 뛸 줄도 몰랐겠지만, 지미봉 중심은 보존 필요성이 있어서 분양을 안 했을 수도 있다. 분양을 안 했는지 안 된 건지 모르지만 남은 곳은 온통 갈대밭으로 변해 있었다. 지미봉은 흙이 아니라 송이산이다. 역대 이장들이 송이를 파내면서 지미봉엔 능선이 완전히 뚝 잘린 곳이 있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보존을 위하여 지미봉 주변 논밭은 분양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지나면서 갈대 사이로 드문드문 갈색이 보였다. 함초일까 싶어서 가까이 가 보았다. 마른 여뀌였다. 바닥에는 미나리가 땅에 바짝 붙어 있었는데 돌미나리다. 아닌 게 아니라 종달리가 고향인 지인에게 여쭸더니 여기 미나리는 장난이 아닐 정도로 맛이 기막히다고 한다.
책방 내부다. 약 99.17m²의 책방에 4,000여 권의 책이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아지트가 필요해”
어쨌든 부부는 갈대밭 한가운데 집을 짓고, ‘수상한 소금밭’이란 간판을 내걸어 게스트하우스를 오픈했다. 당시 제주엔 이주민이 그다지 많지 않은 때다. 따라서 카페는 물론 아무것도 없었다. 제주에 와서 태어난 아기는 어렸고, 오로지 게스트하우스 안에서만 생활하다 보니 현미라 씨는 숨이 막혔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어느 날 문득, 갈대밭 사이를 산책하던 현미라 씨는 자신만의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네이버 블로그에서 글을 쓰며 친해지게 된 친구에게 전화했다. 이 친구는 서울에 있는 언니인데, 한 달에 한 20~30만 원씩 용돈 좀 쓸 수 있냐고 물어봤다. 긍정적인 대답이 돌아왔다. 월세 내고 친구가 서울에서 오가는 항공료 정도는 충분할 것 같았다. 친구에게 작업실을 하나 마련하자고 했더니 흔쾌히 좋다고 했다.
이때만 해도 책방은 생각하지 못했다. 이 이야기가 오간 뒤부터 곗돈 붓듯이 한 달에 20만 원씩 돈을 모았다.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이어야 한다. 종달리 외 다른 곳은 생각할 수도 없었다. 그렇게 계속 걸으면서 살피다가 드디어 찾았다. 시작이 반이라고 했던가, 둘만의 작업실이 구체화 되기 시작했다. 글 쓰는 사람도 아니고 그림 그리는 사람도 아니다. 그러므로 작업이랄 것도 없었다. 그저 둘이 좋아하는 것을 둘 수 있으면 그로 족했다. 둘 사이 좋아하는 것의 공통분모는 책이었다. 아지트에 책이 쌓이면서 아주 자연스레 책방으로 연결되었다. 이때가 2014년이었다. 그렇게 책방은 친구와 동업하게 되었다.
책방 내부 한 공간에서 창을 통해 바라보니 액자처럼 되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음료는 옵션일 뿐”
책방을 시작하고 올해 3월, 자리를 비워야 했다. 책방을 하던 곳은 소를 키우던 축사를 살림집으로 고쳤다가 오래 방치된 창고 같은 곳이었다. 그런 집을 고쳐서 책방을 했으니 아무래도 옛날 분위기가 깔려 있어서 정서적으로는 아늑했다. 그런데 주인이 그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집을 짓게 되었다. 옮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3월에 그 집을 비우고, 게스트하우스 안에 책방을 꾸미는 동안 근처에 임시 있다가 이번 여름에 들어왔다. 그러고 보니 책방도 어느덧 8년 가까이 되었다.
책방 공간은 꽤 넓었다. 약 99.17m²의 공간에 4,000여 권의 책이 있으며 때에 따라서는 음료도 판매한다. 그렇다고 음료가 중심인 책방카페라는 뜻은 아니다. 대부분 책방카페라 하면 음료가 주 판매업종이고 책이 옵션이다. 한마디로 소심한 책방은 음료보다 책이 우선시되는 곳이라는 뜻이다. 음료는 단지 오래 머무르는 사람이 필요로 하므로 그들을 위해서 갖춰 놓았을 뿐 판매가 목적은 아니다. 부부는 오로지 땅이 싸다는 이유로 종달리에서 게스트하우스를 하게 되었고, 이어서 현미라 씨는 친구와 함께 책방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도내에서 책방이 가장 많은 곳이 구좌읍이었다. 왜일까? 부부가 선택한 것처럼 종달리가 땅값이 싸기 때문일까, 아니면 특히 아름다운 곳이어서 그런 것일까. 이유는 모르겠다. 어쨌든 구좌읍에는 다른 지역보다 책방이 많았다. 덕분에 난 개인적으로 하도리 토끼섬밖에 가 본 적이 없는 곳인데 핑계 삼아 여러 번 드나들게 되었다.
널찍하고 시원한 책방엔 꽤 많은 손님이 드나들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꽃씨가 여문다는 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책방지기도 글을 쓸 것 같은 예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는 쓰는 것 보다 읽는 걸 더 좋아한다고 한다. 어릴 땐 일기도 자주 쓰고 했지만, 지금은 분산되는 에너지 중에서 읽는데 신경을 더 많이 쏟는다. 그래도 언젠가는 읽기에 몰린 것들이 모여들어 글쓰기로 수확하는 날이 올 것이다. 책방 동업자인 언니라는 분도 네이버 블로그에 글을 쓰면서 친해졌다고 했다. 이런 사실만 보더라도 그에게는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충분히 있다는 뜻이다.
언제부터인가 난 종종 디카시를 쓰고 있다. 나는 형님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 시댁에 들른다. 그렇게 시댁에 다녀오는 날이면 봉개동에 있는 한 카페에 자주 들른다. 그 카페에 딸린 야외정원이 있기 때문이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야외정원을 둘러보노라면 아늑해지는 기분이 든다. 그날도 카페에 들러 차를 마시면서 정원을 둘러보고 있었다. 꽃이 지고 까만 눈동자처럼 동글동글 씨앗을 맺은 범부채가 내 발길을 잡았다. 카메라에 담은 사진을 보면서 문득 꽃씨가 여문다는 것에 대하여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디카시 한 편을 썼는데, 책방지기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시가 생각났다. 그가 읽고 생각하던 것들이 지금은 뜬구름으로 떠돌고 있겠지만, 언젠가는 반드시 잘 여문 열매가 될 것이라는 믿음이 왔기 때문이다. 아직 마흔, 늦지 않았다. 50이 넘어서 글을 쓰는 사람도 있고, 70이 넘어서 그림을 배우는 사람도 있다. 낭중지추라는 말이 있듯이 그의 재능은 숨길 수 없고, 언젠가는 주머니를 뚫고 세상 밖으로 나올 것이다.
꽃씨가 여문다는 건 / 고봉선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한때는 흔들리며 뜬구름으로 떠돌던 꿈들이 모여드는 것이다
세밑을 맞이하여 책방 안에는 트리형으로 책을 쌓아 놓았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저마다의 소질과 인연”
하고픈 일을 한다는 건 나를 온화하게 하는 일이다. 내가 만약 글을 쓰지 않았다면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내 몸은 온통 가시투성이일 것이다. 예전의 난 참으로 까칠했다. 사는 게 고달프다 보니 육체도 마음도 온통 가시밭이었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달라졌다. 그 많던 가시들이 조금씩 마모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타고난 소질과 인연이 있다. 비록 서울에 산다는 동업자 책방지기는 만나보지 못했지만, 그분 역시 현미라 씨와 닮은꼴이 많을 것이다. 둘은 같은 길을 8년 가까이나 탈 없이 해 왔고, 앞으로도 그리 갈 것이다. 이는 어찌 보면 소질과 인연의 연줄이다. 자신의 소질과 인연을 따라가지 않을 땐 삶이 자꾸 삐거덕거린다는 게 지금껏 살아오면서 내가 얻은 경험치다. 현미라 씨 역시 책방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을지 자못 궁금하기도 했다.
해외여행이라면 부부가 같이 가는 게 보편적이다. 그런데 현미라 씨는 혼자, 그것도 한 달 동안이나 해외로 여행을 떠났다. 그는 여행하며 안나푸르나에서 롯지를 하고 싶다고 생각했고, 남편이 안 된다고 하자 인연의 방향은 제주도가 되었다. 일단 여기까지는 게스트하우스와의 인연이다. 책방은 그 뒤의 몫으로 인연 뒤에 숨어 있었다. 게스트하우스가 자리 잡으면서 다음 차례인 책방이 슬그머니 머리를 내밀었다. 이어서 현미라 씨는 블로그 글쓰기에서 만난 친구를 떠올렸고, 두 사람은 동업자가 되었다.
현미라 씨 혼자 해외여행을 떠나지 않았다면 남편은 제주도로 여행을 오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그때 하필 제주도로 여행을 오지 않았더라면 현미라 씨 또한 제주로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면 제주도에서 땅을 사겠다는 생각조차도 못 했을 것이다. 이래저래 상황은 두 사람을 제주로 오게 했고, 방황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는 도출점도 찾았다. 이 모든 것조차도 어찌 보면 인연이었다.
게스트하우스(수상한 소금밭)와 책방을 같이 운영하고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에피소드”
어려서는 대부분 가난했다. 현미라 씨 역시 마찬가지다. 부모님은 책 읽는 공간을 따로 마련해주거나 그러지 못했다. 그저 하나 있는 라디오를 자주 들었고, 학생 때는 방송반에서 원고 쓰는 일을 담당했다. 그러다 보니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스스로 학교 도서관을 찾게 되었다. 비록 읽어야 할 책보다는 문제집을 사기에 급급했지만 그래도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
초등학교 고학년 때였다. 신문을 보다가 책 광고에 꽂혔다. 전집 광고였는데 책장까지 딸린 게 너무나 근사했다. 어린 현미라 씨는 처음으로 부모님께 그 책을 사달라고 졸랐다. 다행히도 부모님께서는 어렵사리 돈을 마련하여 사주셨고, 딸에게 책을 사줬다는 사실을 굉장히 뿌듯해하셨다. 그런데 문제는 광고로 본 것과 다르더라는 것이었다. 초등학생이 읽을 수 있는 책이 아니었다. 어려운 한자도 많았고 또 두꺼웠다. 두고두고 봤지만, 성인이 될 때까지도 내용은 어려웠다. 어떻게 산 책인데, 차마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 할머니 집에 책장이 다 부서질 때까지 보관했었다.
책방지기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나도 생각나는 게 있다. 내게 독서수업을 받는 아이 중 유튜브에서 설민석의 북 리뷰를 즐겨 보는 6학년 아이가 있다. 이 아이가 어느 날 설민석의 총균쇠 리뷰에 빠져버렸다. 총균쇠가 너무 매력적이고 재미있게 보였던 아이는 엄마를 졸라서 그 책을 샀다. 그런데 책을 받고 포장지를 뜯은 아이는 넋이 나가버렸다. 뒤통수를 맞은 기분이었다. 자신은 도저히 가까이할 수 없는 책이었다. 그러던 중에 내가 그 아이 엄마와 통화를 하게 되었다. 아이 엄마로부터 사정을 전해 들은 나는 아이에게 책 표지 사진을 찍어서 보내라고 했다. 나도 핑계에 읽을 겸 그 책을 주문했다. 그리고 아이한테 화상으로 접속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같이 읽자고 했다. 아이는 구세주라도 만난 듯 좋아했다. 책을 읽기 전 난 아이에게 주문했다. 모르는 어휘가 나오면 동그라미 치고 사전을 찾아볼 것, 책에서 나오는 장소는 지도를 찾아서 반드시 공간을 확보할 것 두 가지였다. 아이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물론 내가 시간에 쫓기다 보니 자주는 읽지 못한다. 그래도 읽다 보니 거의 절반을 읽었다. 포기하지 않는 한 완독하게 될 것이고, 아이도 저 스스로 읽게 될 날이 올 것을 나는 믿는다.
소심한 책방의 발전을 빈다.
책방 바로 옆에 있는 못에는 지금 오리 떼가 몰려와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소심한 책방은”
모든 것이 황량하게 느껴지는 계절에도 풍성함이 존재하는 곳이 있습니다. 추리소설을 읽으며 작가의 의도를 찾아가듯 돌고 돌아야 다다를 수 있는 곳, 전혀 소심하지 않은 소심한 책방으로 가 보세요. 지미봉이 겨울바람을 막아주고 나를 포근하게 감싸는 곳, 운이 좋으면 떼로 몰려드는 철새의 장관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마을책방은 단순한 기호품을 파는 곳이 아닙니다. 대형서점처럼 책을 어마어마하게 팔아치우는 곳은 더욱 아닙니다. 후미진 도심 골목이나 시골 언저리에서 마을책방을 만난다면 그것은 행운이지요. 마을 초입 팽나무 아래 마을사람들이 모여들듯 책벌레들이 도란도란 어우러질 수 있는 사랑방 같은 곳입니다. 제주도 마을 곳곳에 작은 책방들이 사람을 살리고, 다시 사람이 마을을 살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마을책방의 가치입니다. [제주의소리] 시민기자인 고봉선 작가가 바람을 쐬듯 책방마실을 다니고 있습니다. 책과 사람이 만나는 곳 ‘마을 책방’에서 책방지기의 책 살림 이야기를 함께 나눕니다.[편집자 글]
커피동굴플랜트, 이름부터 심상치 않다. 휙, 휙, 눈앞에선 선사시대 석기인들의 모습이 스쳐 간다. 밤사이 눈이 쌓이면 어쩌나, 운전이 걱정되었다. 다행히도 눈은 쌓이지 않았다. 오전 9시, 간간이 날리는 눈발과 함께 집을 나섰다.
이번엔 예비 중학생 2학년인 시원이와 함께했다. 책방 문화도 경험하게 할 겸, 청소년기에 찾아올 기회를 만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렇게 설렘을 안고 찾아간 곳, 책방 “커피동굴플랜트”는 사라봉으로 가는 길 입구에 있었다. 책방지기 박선정 씨는 얘기를 나누는 동안 시원이가 무료하지 않도록 한 권의 책을 건네주었다. 그의 세심한 배려엔 여린 마음이 묻어났다.
식물책방 커피동굴플랜트는 사라봉 입구 2층에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작지만 큰 숲을 이루는 책방”
오전 10시, 박선정 씨가 책방 문을 열자 나와 시원이는 2층으로 올라갔다. 30만평(약 99만㎡) 대지를 천상의 화원으로 일구며 꿈꾸는 대로 살았던 자연주의자 ‘타샤 튜더’가 계단에서 우릴 반긴다.
책방에 들어서자 경음악 사이사이로 새소리가 들린다. 세상에, 이보다 더 고운 숲이 있을까? 셀렉(select)한 책들까지도 모두 식물을 테마로 한 영락없는 숲, 책방 한가운데 있는 커피나무가 건강미를 과시하는 아늑하고도 평화로운 숲이다. 왜 책방 이름을 “커피동굴플랜트”라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책방 커피동굴플랜트는 극소수의 마니아들만이 이용하는 아지트 같은 곳이다. 박선정 씨는 이 고요한 숲에 많은 사람이 북적거리는 걸 원하지 않는다. 특히 우르르 몰려드는 관광객은 더더욱 원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채널에 실리거나 이를 위한 인터뷰는 가능한 자제해 왔다. 실렸다고 많이 찾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책방 지도를 보고 찾아오는 사람은 많았다. 그때 한동안은 사실 스트레스가 되기도 했다. 그는 고요한 숲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지금 이대로가 딱 좋다.
책방 커피동굴플랜트의 테마는 식물이다. 그래서인지 식물을 알고 싶어 하는 손님이 더 많고, 그런 손님이 와서 책을 본다. 그런데 간혹 반갑지 않은 손님이 있다.
“어, 이게 굉장히 특이하네.”
책이 목적이 아닌, 구경삼아 온 사람들이 뱉는 말이다. 이들은 책방지기의 기분이나 다른 손님을 의식하지 않는다. 책 한 권 손에 들고 사진 찍은 다음 인스타나 블로그에 올리면서 자신을 드러내기에만 급급해한다. 박선정 씨가 숲에 드는 이유는 누리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런 손님을 볼 때는 자신의 숲이 파괴됨을 느낀다. 그는 자연 그대로인 숲을 원한다.
박선정 씨는 제주도를 무척 좋아하는 여행자였다. 광적이다시피 한라산을 좋아하고, 제주의 숲에서 노는 걸 좋아하는 그는 여행을 거듭할수록 제주도가 좋아졌다. 처음엔 1년에 한 번이던 여행이 6개월에 한 번, 분기별에 한 번, 한 달에 한 번, 일주일에 한 번, 그러다가 결국은 일 년만 살아보기로 했다. 그렇게 시작한 제주에서의 삶이 이제 9년 차가 되었다. 그리고 2019년 8월엔 생각지도 못했던 책방을 운영하게 되었다.
‘딱 2년만 해보자.’ 그렇게 시작한 책방이 벌써 2년하고도 반이다. 그런데 그는 왜 하필 식물 테마 책방을 하게 되었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식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물론 공간이 넉넉하다면 식물만 테마로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좋아하는 책이 식물 관련 책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책방을 시작할 때 그에게 주어진 환경은 딱 요만큼, 20m² 정도였다. 이렇게 주어진 공간에서 많은 책을 다룰 수는 없다. 그렇다면 답은 정해졌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테마를 다루는 것이다. 더불어 자신도 식물을 공부하고 싶었다. 여기에다 그림에 관련된 예술을 다루고 있어서 아트도 겸했다. 그 결과 책방은 식물 관련 80%, 아트 관련 20%의 책들로 배치해 놓았다. 식물을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한 둘 일까마는, 그는 유달리 식물을 좋아했다. 식물들과 소통할 정도로 좋아하는 그는 어쩌면 식물과 대화를 할 수 있는 ‘채널러’인지도 모른다.
여든아홉 살이 되었지만 하고 싶은 일, 배우고 싶은 것이 아직 많습니다. 오래도록 이렇게 누리는 기쁨을 만끽하고 싶어요. 산다는 건 정말 멋진 일이니까!! -타샤 튜더
책방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식물책방답게 타샤 튜더의 사진과 그의 글, 식물 화분이 놓여 있다. 액자의 타샤 튜더는 박선정 씨가 직접 그린 그림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나의 재산은”
농부의 딸로 태어난 나는 방학이면 아침부터, 학기 중에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밭에 가서 일해야 했다. 농번기면 학교를 결석하기도 했다. 밭에 가서 일을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사계절 내내 밭을 매고 수확 철이면 보리며 유채, 콩, 조 등을 베야 했다. 특히 새벽부터 먼 곳까지 가야 하는 소꼴을 벨 때는 더더욱 밭에 가는 게 싫었다. 이런 와중에도 나를 달래주는 요소가 있었다. 천성적이었는지 모르지만, 밭에 가면 냇가를 쏘다니면서 식물들과 노는 것이다. 그렇게 어릴 적에는 식물들과 친구로 지냈고, 어른이 되어서는 식물을 소재로 한 창작의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 한마디로 나의 재산은 농부의 딸로 태어난 것이다.
그래서인지 식물과 관련된 책을 보면 왠지 반갑다. 여전히 좋아하는 건 문학이지만, 그런데도 식물 이야기가 보이면 나도 모르게 눈길이 간다. 신문에서도 마찬가지다.
책방에 들어섰을 때 특히 반가운 책이 있었다. 2021년 8월15일에 출판된 ‘한국 식물 이름의 유래’(조민제·최동기 외, 심플라이프)였다. 저자 중 한 사람이 내가 아는 분이었기 때문이다. 1900쪽이 넘는 벽돌 책인 데다가 가격도 만만치 않은 12만8000원짜리다. 반가웠지만 이곳에서는 구매할 수 없었다. 며칠 전 이미 구매했기 때문이다.
저자 중 한 사람인 지용주 선생님과 카톡을 주고받던 어느 날이다. 지용주 선생님은 프로필 사진에서 이 책을 들고 환하게 웃고 계셨다.
‘아, 책을 내셨구나.’
그때 난 마을책방을 통해 책을 주문했다. 책을 손에 쥐었을 때의 설렘, 식물 이름을 모를 때마다 톡을 보내면 지용주 선생님은 언제나 답해주셨다. 이분은 나에게 카카오톡 속에 들어 있는 백과사전인 셈이다.
책방 전체 모습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숲에 들면 행복해”
숲에 들면 행복을 느낀다는 박선정 씨, 어느 날부터인가 왜 숲을 좋아하는지 자신을 관찰하기로 했다. 보통의 사람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 대부분 사람은 산엘 가든 숲엘 가든 목표 지점을 정해놓고 간다. 그런데 박선정 씨 자신은 그렇지 않았다. 그는 정상에 연연하지 않았다. 사람들이 정상까지 갔다가 돌아오는 데 1시간이 걸린다면 그는 네다섯 시간 걸렸다. 왜일까? 숲에 들면 길섶에 있는 식물들 하나하나와 인사를 나눈 뒤 이야기하노라고 빨리 갈 수 없는 것이다. 그렇게 숲에 다녀온 날은 여느 때보다 특히 더 식물들에게 사랑을 느낀다. 그렇게 흥미를 느끼며 좋아하고, 그런 행위를 즐기던 어느 날이었다. 이들의 이름도 잘 모르고, 이론적으로도 아는 게 없는 무식쟁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다. 그래서 식물을 공부하기로 했다. 필연이었을까, 공교롭게도 그 시기에 이 공간에서 책방을 해 보지 않겠느냐는 제의가 들어왔다. 놀랐다. 누군가 자신의 뇌를 들여다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당시엔 식물에 거의 미쳐 있었을 때였고, 마침 식물을 공부하고 싶었던 때다. 식물을 테마로 한번 해 보고 싶었다. 그렇게 책방을 시작하게 되었고, 식물 책들을 셀렉하게 되었다.
2019년 8월까지만 해도 식물 책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런데 2020년 초, 코로나19가 터지면서 집 안에서만 활동해야 하는 등 사람들은 우울한 시기를 맞아야 했다. 힐링의 요소가 필요했다. 그래서인지 식물 책이 쏟아져 나왔다. 날마다 신간이 떴다. 처음 시작했을 때는 책방 한쪽을 차지할 정도였던 책이 지금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책방은 식물 책으로 꽉 찼다.
책방을 시작할 때 의도했던 건 “식물을 공부하면서 2년만 해 보자”였다. 그런데 식물의 세계는 끝이 없었다. 신간도 계속 쏟아졌다. 책방과 함께 식물을 하나하나 알아갈 즈음, 기적처럼 사람들이 찾아왔다. 여성이 90%로 성비 차도 매우 컸으며, 이로써 남성보다는 여성이 식물에 관심이 많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이처럼 책방에는 식물을 공부하고 싶고 식물 키우는 걸 좋아하며 숲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여기에서 박선정 씨는 또 다른 소득을 얻는다. 이론 외에도 손님들이 들려주는 스토리와 상호 작용하며 더 많은 공부가 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2년을 훌쩍 넘겨버렸고, 언제 끝을 맺어야 할지도 모를 상황이 되었다. 책방을 찾는 사람들, 식물, 책과 교감하는 게 좋아서 식물을 테마로 한 책방은 그렇게 지금까지 흘러왔다.
위에는 예술 파트, 아래는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에세이다. 보통은 베란다 정원에서 가꾸는 식물을 키우는 에세이와 숲에서 느낄 수 있는 에세이가 진열되어 있다. 액자 속의 인물인 타샤 튜더는 책방지기 박선정 씨가 직접 그린 그림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과거 소환”
박선정 씨와 얘기를 나누고 있자니 왠지 예전의 나를 보는 것 같아 코끝이 찡했다. 한동안 날마다 오름으로 가던 때가 있었다. 운동 겸 식물을 만나기 위해서다. 나는 식물의 접사를 즐겼다. 접사하고 보면 식물의 생각이 보인다. 때론 그들의 메시지도 들린다. 때로는 미안한 생각도 든다. 식물들도 감추고 싶은 게 있을 텐데, 강제로 뇌를 내시경으로 검사하고 스캔하며 그들의 생각을 읽으려 한다는 것 같은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또 한 때는 해마다 가을이면 한라산 1100고지 습지대엘 갔었다. 그때 감시카메라에 걸려 쫓겨났기도 했다. 그렇게 1100고지에 드나들던 어느 날, 친구의 전화를 받으며 마당에서 통화할 때였다. 통화하는데 마당 잔디 사이사이에 고사리삼이 보였다. “이게 왜 여기 있지?” 통화하다 말고 난 고사리삼을 찾아 하나둘 셌다. 제법 많았다. 좁쌀보다 잘디잔 금색 포자가 내 몸 어딘가에 묻어왔을까? 몇 해 전 집을 리모델링하면서 지금은 모두 사라졌지만, 왜 우리 마당에 고사리삼이 돋아났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이다.
나 역시 한동안은 숲에 미쳐 있었다. 그런데 다행스러운 건 이런 나를 남편이 응원해 준 것이다. 어느 날이었다. 야근이 있던 날, 나의 섬사철란 타령에 지친 남편은 아침에 퇴근하면서 나를 깨웠다. 그리고 5.16도로에 있는 숲으로 가서 한라천마와 섬사철란을 만났다. 입이 찢어졌다. 그런데 숲 관리자가 와서는 나가라고 했다. 그래도 좋았다. 영영 만나지 못할 한라천마와 꽃이 핀 섬사철란을 만났다는 사실은 허파에 바람 든 사람처럼 자꾸만 나를 헤실거리게 했다.
또 잊을 수 없는 건 바리메오름과 노꼬메오름에 갔을 때다. 새벽 바리메오름 분지에는 안개가 가득 갇혀 있었다. 그때의 그 환희,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고 눈물이 흘렀다. 노꼬메오름에서 새벽 안개와 함께 만난 여명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 자궁 속이 이랬을까? 청정, 그 자체였다. 누를 수 없었던 벅찬 가슴은 터질 것만 같았다. 그때 나 말고 또 한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여명을 향해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새벽안개와 더불어 가을 억새를 물들이는 여명은 무아지경에 몰입하게 했다. 갑자기 오름 정상에 타령이 울려 퍼졌다. 사진을 찍던 사람이 벅찬 가슴을 누르지 못해 타령과 함께 덩실덩실 춤을 추기 시작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주변 전체가 흔들렸다. 안개도, 여명도, 오름도 흥을 참지 못한 것이다. 나의 머릿속도 다르지 않았다.
식물이 등장하는 그림책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판타지 분위기를 조성하는 책방”
누구나 식물을 좋아할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모든 것엔 양면성이 존재하는 법, 식물에 관심 없는 사람도 의외로 많다. 나는 식물에 관심이 많다. 그래서인지 식물을 주제로 한 책방이 무척 반가웠다.
책방은 책을 파는 곳이다. 영업을 시작한 이상 책이 팔려야 한다. 다시 말하면 팔기 위한 책, 즉 고객들이 원하는 층의 책을 중심으로 책방을 채운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또한 편견이다. 커피동굴플랜트의 책은 식물을 테마로 한다. 고객층이 한정된 책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이 한정된 책을 찾는 극소수의 마니아들은 한번 오면 적잖은 책을 구매한다. 한마디로 책방 커피동굴플랜트는 극소수의 팬들로 운영된다는 뜻이다. 작지만 큰 책방 커피동굴플랜트의 식물의 세계는 무한하다. 몇 권의 책이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500종은 될 거라고 한다.
왜일까? 소설 ‘해리포터’의 등장인물 헤르미온느가 떠오른다. 내가 마치 해리포터의 한 장면으로 들어가 있는 것 같다. 손을 대면 서가는 죽죽 늘어날 것 같다. 이렇게 느껴지는 건 나만이 아닌가 보다. 다른 사람들도 이곳에 오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다닐 법한 공간 같다고 한다. 판타지 요소가 들어있는 것 같은 책방, 야릇하다. 책방에 들어서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빠져버리는 야릇한 분위기다. 그래서 더 머무르게 되고, 책 한 권을 더 살피게 된다.
나는 한꺼번에 많은 책을 구매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이런 내가 책방을 탐방하면서 좋았던 건 발견이다. 생각지도 못했던 책을, 더군다나 식물과 관련된 책만 있는 곳에서 내 눈알을 확 잡아당기는 발견, 나도 모르게 손이 가는 책을 발견하는 기쁨은 크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책 ‘야생화 일기’도 마찬가지다. 그저 월든의 호수 정도만 생각하다가 이곳에서 발견한 데이비드 소로의 야생화 일기는 나를 설레게 했다. 책을 읽지 않아도 난 벌써 데이비드 소로를 따라 야생화 일기를 쓰고 있다. 이런 발견이 나한테는 충격이다. ‘어떤 책을 사야겠다’라고 해서 책방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무작정 다니면서 만나는 발견의 기쁨이다.
책방 한가운데에는 책방을 상징하는 커피나무와 여러 종류의 식물이 놓여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오름의 현주소”
지금 제주의 숲은 위기다. 눈앞의 이익을 절대 포기 못 하는 사람들, 가진 자들의 힘은 세고, 힘없는 사람은 미천한 자가 되는 현실이다. 제2공항 건설로 활주로가 들어서면 없어지게 될 열 개의 오름, 윗부분이 깎인 대수산봉, 비자림로 확장 공사, 심지어 오름에 냉장고가 버려져 있는 일도 있다. 마시던 물병을 버리고 간다면 나쁜 습관이 있어서 그런가 보다 하겠지만, 냉장고의 경우는 다르다. 이건 엄연한 범죄다. 바다에서는 사단법인 세이브제주바다가 활동하고 있지만, 중산간 쪽에는 아직 이런 팀이 없다. 누군가가 숲에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알리면서 정화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박선정 씨 목소리에 습기가 묻어났다.
정해진 탐방로로만 다니고 분화구엔 들어가지 말라는 데도 극구 들어가는 사람들이 있다. 용눈이오름은 분화구 안에 탐방로가 없는데도 한두 사람이 들어가다 보니 아예 길이 만들어지며 훼손되었다. 박선정 씨는 이런 오름의 현주소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알았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불법 채취도 문제다. 옛날엔 숲에 가면 나무에 붙어 있는 콩짜개가 참으로 예뻤다. 그런데 지금은 콩짜개가 붙어 있는 나무를 보기 힘들다. 모두 뜯겨 오일장에서 판매되는 상품으로 둔갑했기 때문이다. 파괴는 가속화되고, 이런 현실을 마주할 때 박선정 씨는 속이 상하다.
식물을 주제로 공부할 수 있는 책이 진열되어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고객과 책방지기는 평등 관계다”
오름을 망가뜨리는 사람과 책방에서 무례한 행동을 하는 사람은 어찌 보면 동격이다. 책방지기의 의사나 다른 손님은 고려하지 않고 행동하는 사람들, 사진을 못 찍게 했더니 자신이 블로거라며 홍보해줄 건데 고마워해야지 않느냐는 식은 이제 사라져야 한다. 코로나19 이전, 활동이 자유로웠을 땐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대놓고 삼각대를 세우는 손님들도 있었다. 자신이 책 읽는 사람이라는 걸 과시하려는 듯, 책을 들고 사진 찍은 다음 블로그나 인스타에 올리는 게 목적인 사람들이다. 그런데 문제는 진짜 책을 읽는 사람이 아니라 보여주기식, 허영심으로 그러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이다.
처음에는 순수한 마음으로 모든 손님을 반갑게 맞이했다. 그런데 나중에는 그럴 수 없었다. 손님이라고 다 반가운 것은 아니었다. 책방에 들어서는 손님이 카메라만 들고 있어도 책방지기는 자신도 모르게 ‘까칠 모드’로 변했다. 그러면서 사진 찍으면 안 된다며 제재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의도가 아니었음에도 순수하게 다가오는 사람에겐 상처가 된다. 그걸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으면 책방을 유지할 수 없었다. 이후 누구든 블로그에 올리고 싶다면서 사진 찍어도 되냐고 하면 거절했다. 들어가지 말라는 분화구에 들어가서 사달이 났다는 용눈이오름처럼, 여기도 블로거입네 하며 들어와서는 순수한 마음으로 손님을 맞이하려는 책방지기의 마음에 생채기를 냈다. 그로 인하여 순수하게 다가오는 손님들조차 상처 입는 경우도 생겼다.
커피동굴플랜트는 수많은 식물 이야기가 담긴 책들이 있는 엄연한 숲이다. 세상 그 어디에 내놓아도 떳떳하게 고개 들 수 있는 상징적인 숲인 것이다. 책방 한가운데엔 책숲을 보완하는 7년생 커피나무와 3년생 커피나무, 어린 커피나무, 양치류 등 식물이 많다. 정원도 화단도 아닌 엄연한 숲, 그렇다. 커피동굴플랜트는 어마어마한 식물이 살아 숨 쉬는 작지만 큰 숲이다.
이제 까칠하고 불친절한 주인이라고 소문나도 어쩔 수 없다. 박선정 씨는 책방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와서 책방의 가치를 활용하고 갔으면 하고 바란다. 그도 처음엔 오직 좋은 주인이 되고 싶었고 모두에게 친절해지고 싶었다. 그런 마음으로 시작했는데 몇몇 손님이 그의 마음을 파괴해버렸다. 그는 이제 소문을 의식하지 않기로 했다. 소신껏 밀고 나가기로 했다.
결국에는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 한 손님이 오셨었다. 책방지기는 아직도 그 사람의 행동이며 표정, 말투를 생생하게 기억한다. 대부분 손님은 들어서면서 인사하거나 사진 찍어도 되는지 물어본다. 그런데 그 사람은 계단에서부터 찰칵찰칵 사진을 찍으면서 들어왔다. 책방에 들어와서도 누가 있건 말건 상관하지 않았다. 가뜩이나 그런 손님들로 불쾌감이 쌓이고 있던 터였다. 박선정 씨는 그 손님의 행동을 보는 순간 마음이 닫혀버렸다.
“왜 여기다 책방을 여셨어요? 왜 식물책방을 여셨어요?”
그 손님이 물었지만 곱게 대답할 수 없었다. ‘지금 곧 문 닫을 때 됐다’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사실 틀린 대답도 아니었다. 책방을 시작할 때 2년을 목표로 했고, 머잖아 2년이 다 되기 때문이다.
얼마 후 지인이 캡처 물을 하나 보내왔다. 그 손님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었다. 원인은 하나 없고, 일방적으로 박선정 씨만 폄하하는 듯 하는 글이다. 본의 아니게 읽었지만 씁쓸했다. 이로 상처 입은 건 박선정 씨다. 이처럼 블로그에든 인스타에든 자기를 보여주기 위한 행위는 책방지기에게 상처를 입히는 거다. 난개발로 숲이 무너지듯이 작고 큰 숲인 책방도 이런 사람들로 인하여 무너지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책방지기에게 습관적인 경계심을 갖게 했다. 왜 책방지기는 을이 되어야 하는가? 손님과 책방지기는 갑과 을의 관계가 아니다.
식물 가드닝에 관련된 책들(좌)과 채식(우)에 관한 책들이 진열되어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소비자의 의식도 변화해야 할 때”
손님 중 95%는 마니아들이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무례하게 구는 손님이 있다. 코로나19 초반까지만 해도 이런 손님들이 하루 서너 팀씩 왔었다. 그땐 ‘이런 사람들에게 보여주려고 책방을 오픈하고 있나, 문 닫아야 하지 않을까’하는 회의감이 날마다 밀려왔다. 순수하게 ‘여기 책과 공간을 이용하고 싶은 손님에게만 오픈하는 건 어떨까’하는 고민도 했다.
예약제를 생각해보지 않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사라봉에 왔다가 계획 없이 방문하는 손님들이 있다는 사실을 묵과할 수 없었다. 게다가 예약제는 며칠 전부터 약속을 잡아야 하고, 변수가 생길 수도 있었다. 아무튼, 한동안 까칠 모드로 나갔다. 그래서인지 코로나19 때문인지 모르지만 이제 그런 손님은 많이 줄었다.
진실의 힘은 세다. 자신의 무례함은 접어둔 채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지만, 책방에 대하여 좋은 글을 올린 사람은 더 많다. 설령 책방지기를 폄하하는 글을 읽었다고 할지라도 다른 곳의 글도 읽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만의 기준으로 평가할 것이다. 또 비판적 사고를 지닌 사람들은 글을 읽어도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그 블로거의 말대로라면 책방은 유지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양한 고객층이 보장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마니아 손님들은 책방의 가치를 높여준다. 이들은 우선 책방 한가운데 있는 식물의 존재를 알아봐 준다. 마치 품에 자식이나 되는 것처럼 박선정 씨는 자신의 책방에 있는 식물들을 예뻐해 주는 것만으로도 이들에게 감사하다.
순수한 목적으로 오는 손님들 외에는 경계심이 생긴다는 책방지기, 그래서 마음이 닫혔고 말을 꺼내는 데 오래 걸리는 것 같다는 책방지기, 누가 그를 이렇게 만들었을까. 몇몇 무례한 손님들이다. 이제 소비자도 의식의 전환이 필요한 때다. 책 한 권을 쓰기 위해서 작가는 엄청난 시간과 공을 들인다. 그렇게 공들여서 탄생한 책들을 단지 페이퍼로 혹은 물건으로, 하나의 굿즈처럼 여겨서는 안 된다. 단순하게 ‘책이 예쁘다’가 아닌, ‘이 한 권의 책 안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에 대해서.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에 흥미를 느끼는 사람들만 왔으면 좋겠다는 게 책방지기의 바람이다.
우리는 관계로 맺어진다. 요즘은 연인의 관계도 소개팅 앱을 이용하던데, 이 경우 외형 말고 뭘 볼 수 있을까. 외모야 성형수술 하면 되고, 내면은 의술로 성형할 수 없다. 소개팅 앱에서 연인의 관계를 형성했다고 해도 내면이 없으면 문제가 생긴다. 책도 마찬가지다. 책은 내용을 들여다봐야 가치를 알 수 있다. 그런데 일부 손님들은 겉만 보고, 겉만 보이며 허영심을 나눈다. 책방의 책을 하나의 굿즈로 여기며 사진을 찍고, 블로그나 인스타에 올리면서 애독가인 체 하는 사람들, 소개팅 앱에서 외모로 맺어지는 관계와 뭐가 다를까. 책방의 가치를 아는 사람만 와 줬으면 좋겠다는 책방지기의 말이 아프게 다가왔다.
책방을 찾는 손님들이 가장 선호하는 책들(우)이 진열되어 있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다양성을 인정하다”
음식점에 갈 때는 그곳의 음식이 먹고 싶어서 가는 사람이 있고, 허기를 채우려고 가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 하면 또 사진만 찍으려고 가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책방을 찾는 이들의 성향 또한 다양하다. 얼마든지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요즘 박선정 씨는 부쩍 생각이 많다. 손님들이 책방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을 몰라서 그러는 건 아닐까에 대한 고민이다. 손님조차도 자신의 행동이 옳지 못한 것임을 모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박선정 씨는 손님들이 책방에서 지켜줬으면 하는 바람을 써 붙일 생각이다. 그래야 사전 이용 규칙을 알고, 서로 기분을 언짢게 하는 일이 발생하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서다. 이렇게 소통하다 보면 손님들은 다른 책방에 가서도 에티켓을 지키게 될 것이다. 손님을 불편하게 하면 자신 역시 불편했다.
수채화를 그리는 박선정 작가가 자신의 집에 있는 책장을 직접 그린 것이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오름오름”
책방 탐방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서른아홉 번째다. 마을책방에 갈 때마다 만날 수 있는 책 중의 하나가 “오름오름”이었다. 몇 권의 책이 나란히 꽂혀 있는 걸 볼 때마다 오름, 오름, 마음속으로 되뇌면서 발을 내딛는 운율이 느껴졌다. 그 책을 ‘살까, 말까’를 고민하며 여기까지 왔다. 아마도 “오름오름”의 저자를 만나려고 그랬던 것 같다.
지난 여름부터 두 번 통화했다. 그때마다 서울에 있다고 했다. 그런데 책방을 방문하고 보니 그가 왜 서울에 있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작가로 활동하고 있었다.
어디선가 “오름오름”의 저자가 마을책방 책방지기라는 애길 들었다. 박선정 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가 “오름오름”의 저자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예감은 적중했다. 바로 커피동굴플랜트의 책방지기가 “오름오름”의 저자였다.
“오름오름”은 6년 동안의 박선정 씨 오름 탐방 기록으로, 오름을 좋아하지만 어떻게 가야 할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방법을 알려주는 책이다. 책 속에는 오름의 전반적인 구조를 알 수 있는 지도도 그려져 있다. 그래서 오름을 좋아하는 분들에겐 더없이 필요한 책이다.
Part 1에서는 해안 지역 오름, Part 2에서는 동부권 중산간 오름, Part 3에서는 서부권 중산간 및 한라산국립공원 오름을 소개하고 있다. 저자가 오름에 오르게 된 계기, 오르는 과정에서 보는 풍경과 느낌, 시각적 요소는 물론 청각적 요소를 합한 공감각적 요소까지 더하여 읽고만 있어도 오름에 오르는 기분을 느낄 수 있다. 게다가 오름 정상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을 도민의 삶과 오름과의 관계로 연결하며 오름 역할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준다.
나 역시 어떤 오름에서는 입구를 찾지 못해 종종 헤맨 적이 있다. 그때 만약 이 책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언제나 정해진 오름에 가는 게 대부분이지만 목차를 보면서 내가 갔던 오름을 짚어보았다. 해안 지역 오름은 열네 군데, 동부권 중산간 오름은 네 군데, 서부 중산간 및 한라산국립공원 오름은 열네 군데였다.
책방 커피동굴플랜트의 책방지기 박선정 씨가 지은 제주 오름 트레킹 가이드북 “오름오름”의 표지다. 사진=고봉선. ⓒ제주의소리
“책방 커피동굴플랜트는”
왠지 모를 불안에 시달리고 계시는가요? 그렇다면 숲의 정서가 그리워서 그런 건 아닐까요? 더없는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낄 수 있는 곳, 사라봉 입구에 있는 커피동굴플랜트를 찾아가 보세요. 커피동굴플랜트의 상징인 커피나무가 건강미를 과시하는 곳, 판타지 요소가 분위기를 더해주는 곳, 작지만 큰 숲을 도심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핸드드립 커피와 함께 작지만 큰 숲을 이루는 커피동굴플랜트에 오롯이 나를 맡겨 보세요. 가까이 사라봉에 오를 수 있다면 효과는 배가 되겠지요. 나도 숲의 일부가 되는 느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