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제주박물관은 국립해양박물관‧제주대학교박물관과 공동으로 특별전 <해양 제주 OCEAN JEJU – 바다에서 바라본 제주바다>를 개최합니다.
이번 전시는 제주에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고, ‘탐라국’이 있었던 아주 오래전 이야기를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한 번쯤 들어봤던 이름의 사람들, 혹은 이름을 남기지 않은 사람들, 그리고 언제인가 본 듯한 삶의 모습들을 이야기합니다.
<1부-바다를 건너다>는 제주바다를 건너간 사람들, 그리고 바다를 건너온 이방인들의 이야기입니다. 아주 일찍부터 제주사람들은 바다를 건너 육지와 왕래하였습니다. 오랜 경험과 지식이 축적되어 제주바다에는 일정한 바닷길이 형성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제주바다의 독특한 해저지형과 계절풍, 해류, 조류에 따라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지식인들의 기록에 간혹 등장하는 진짜 제주사람들이 들려주는 제주바다 이야기는 육지에서 온 관리에게도, 제주에 사는 선비에게도 낯선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구 반대편에서는 16세기 이후 많은 유럽국가들이 무역과 탐험을 위해 아시아의 바다로 진출하였습니다. 한때 ‘Ilha dos Ladrones(도둑들의 섬)’, I.Fungma(풍마) 등으로 불렸던 제주는 18세기 항해자들에 의한 본격적인 탐사가 이루어지면서 드디어 ‘Quelpart(켈파트)’라는 확실한 이름을 갖게 됩니다. 특히 1653년 제주에 표류한 네덜란드인 헨드릭 하멜(Hendrik Hamel)의 난파기는 제국의 바다를 꿈꾸던 사람들의 호기심을 더욱 자극하였습니다.
<2부-바다에서 살아가다>는 바로 그 제주바다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제주사람들에게 섬은 삶의 모습을 결정짓는 조건이고, 바다는 살아가는 터전입니다. 바람에 날릴 만큼 얕은 토양, 비가 내려도 금방 말라버리는 하천, 장기瘴氣 가득한 바람과 습기 등 화산섬의 척박한 조건은 바다가 있어 그래도 살 만했습니다. 검은 해류를 따라온 고기를 쫓아 어부는 배를 띄우고, 바람이 멎는 날이면 해녀들은 바다밭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바다는 풍요롭지만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제주섬은 무사한 항해와 풍어를 바라는 간절한 믿음을 들어줄 신들이 함께했습니다. 육지에서 온 사람들을 힘들게 하는 눈 먼 바람과 괴이한 비도 제주사람들에게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이 전시의 주제는 바로 사람입니다. 많은 사진작가들이 제주만의 독특한 삶을 카메라에 담아왔습니다. 허벅에 물을 길어 등에 메고 가는 여인들. 도롱이를 입고 털벌립을 쓴 테우리. 애기구덕에 동생을 재우는 아이. 테왁과 망사리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는 해녀들. 사진 속의 제주사람들은 지금 우리의 눈에 낯설지 모르지만, 제주에서는 가장 보통의 존재들입니다.
제주바다가 시작되는 곳, 섬의 가장 끝에는 등대 이전에 도대불이 있었습니다. 해가 저물 무렵 가장 먼저 바다에 나가는 어부가 불을 켜고, 마지막에 포구에 들어온 어부가 불을 껐다고 합니다. 이 전시는 바람에 흔들리는 도대불을 등대 삼아 바다로 나가던 사람들, 그리고 그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대는 노인성을 보지 못하였는가/ 별 중에 최고의 영험을 지닌 별, 노인성이라는 별을/ 이 별은 사람들의 수명을 늘려주나니/ 별 비추는 곳마다 장수하는 사람들이 많다네."
제주에 유배 갔던 조선 후기 문신 조관빈(1691~1757)은 별 하나에 매혹돼 이렇게 노래했다. 이름은 노인성(老人星). 목숨별(수성·壽星), 남극노인성이라고도 하고 서양에선 카노푸스라고 부른다. 태양보다 70배 크고 밤하늘에서 둘째로 밝은 별이지만 고도가 너무 낮아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이 별이 뜨면 나라가 평화로워지고 별을 본 사람은 무병장수한다고 믿었다. 우리나라에선 제주도와 남해안 일부 지역에서, 그것도 10월부터 3월까지만 볼 수 있다.
이 희귀한 별이 전시장에 떴다. 국립제주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무병장수의 별 노인성, 제주를 비추다' 특별전이다. 조선 18세기 하늘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대형 그림 '신구법천문도'(가로 5m×세로 2m)를 비롯해 노인성과 관련된 역사·미술·문헌 자료가 시간의 흐름 따라 전개된다. 김명국, 김홍도, 김득신 등 조선 대표 화가들이 노인성을 의인화해 그린 '수노인도'를 모았고, 노인성이 비추는 장수의 땅 제주 이야기를 기록과 함께 풀어놓았다.
박물관 촬영팀이 한라산 정상에 올라 찍은 제주의 밤하늘. 화면에서 오른쪽 환하게 빛나는 별이 노인성이다. /국립제주박물관
밤하늘의 수많은 별에 저마다의 이름을 달아 정리한 건 약 2000년 전 중국 한나라 때다. 왜 별 이름을 '노인'이라 붙였을까. 양수미 학예연구사의 대답이 흥미롭다. "옛사람들은 노인을 단지 나이 많은 사람으로 보지 않았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완전하고 이상적인 인간에 더 가까워지는 일이었고, 오래 사는 것은 곧 인간으로서 완성된다는 의미였다." 그래서 이 강력하고 빛나는 별에 인간 최고의 가치인 '수명(壽命)'을 부여하고, 황제와 제국의 운명을 별에 물었다는 얘기다.
압권은 한라산 정상에서 타임랩스 기법으로 촬영한 제주의 밤하늘. 노인성이 뜨고 지는 백록담의 밤 풍경이 대형 스크린 위에서 장엄하게 펼쳐진다. 아득한 천공(天空)이 아니라 서귀포 앞바다 수평선 위에 내려앉아 홀로 영롱하게 빛난다. 박물관은 작년 12월부터 네 차례 시도한 끝에 개막을 열흘 앞두고 카메라에 별을 담는 데 성공했다. 4분짜리 영상이 여러 번 돌아갈 때까지 화면 앞에 앉아 소원 하나를 빌었다. 전시는 6월 16일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