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우리가 지금까지
이런 훌륭한 분을 잊고 살았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최재형 선생이야말로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들의
롤 모델로 삼을 만큼 멋지고 훌륭한 분이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코리안 디아스포라로 살아야 했던
불행한 동포들을 조명하며
가슴이 많이 아팠다.


- 문영숙의《독립운동가 최재형》중에서 -


* 조국을 떠나
전 세계에 흩어진 코리안 디아스포라.
잊혀진 사람도 많지만 반드시 기억하고 기려야 할
롤 모델도 많습니다. 연해주에 살며 독립운동에 막대한
자금을 댔던 최재형은 그 대표적 인물입니다. 아직도
750만 명의 코리안 디아스포라가 있고, 그중에 24세
미만의 청소년만 200만 명입니다. 땅덩이도 작고
사람이 자원인 이 나라에서 코리안 디아스포라,
특히 청소년 디아스포라를 연결하는 일은
시급한 시대적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반응형

'생활의 발견 > 아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좋은 움직임'을 배우고 수련하라  (0) 2022.03.31
지난 겨울에 앓은 감기  (0) 2022.03.30
자기 영혼  (0) 2022.03.28
느림  (0) 2022.03.28
생명은 기계에 있지 않다  (0) 2022.03.25
반응형

1945년,
해방을 6개월 앞두고
윤동주가 2월 16일에,
송몽규는 3월 7일에 피골이 상접한 상태로
숨을 거뒀다. 윤동주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고
죽어갔고 송몽규는 눈을 부릅뜬 채 죽어갔다.
순국 당시 윤동주와 송몽규의 나이는
28살이었다.


- 하성환의 《우리 역사에서 왜곡되고 사라진 근현대 인물 한국사》 중에서 -


* 중국 연변 용정에 가면
윤동주 생가가 있고, 바로 옆집에
송몽규의 생가도 있습니다. 같은 나이에 태어나
서로 벗하며 자랐고, 일본 유학도 함께 했고, 그 기막힌
생의 마감도 함께 했습니다. 28세, 꽃다운 나이에,
그것도 조국의 해방을 불과 6개월을 앞두고
말입니다.윤동주의 외마디 비명,
송몽규의 부릅뜬 눈을 우리는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반응형
반응형
 


1864년 1월7일, 
외가에서 태어난 서재필은 
일곱 살 때 7촌 아저씨인 서광하 댁의 
양자로 들어간다. 어머니는 어린 아들의 
손을 부여잡고 눈물을 철철 흘리며 말했다. 
"어미가 보고 싶으면 소나무를 쳐다보며
'솔!'이라고 외쳐라. 이 어미는 천리만리 
떨어져 있어도 그 소리를 들을 수 있단다." 
"솔..." 
서재필은 마음이 편해지면서 
몸에 뜨거운 기운이 감돌았다. 


- 고승철의《소설 서재필》중에서 -


* 내 어머니를 
내 어머니라 부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내 조국을 내 조국이라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은유와 암호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면 
은유와 암호만으로 통합니다. 
'솔!' 단 한 마디만으로도 
모든 것이 통합니다.

 

반응형

'생활의 발견 > 아침편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여러분, 우리 함께 행복합시다!  (0) 2014.12.31
선택보다 더 중요한 것  (0) 2014.12.30
새해에는...  (0) 2014.12.27
내가 먼저 다가가서  (0) 2014.12.26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좋다  (0) 2014.12.25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