政治敎授 Polifessor
정치(Politics) + 교수(Professor)의 합성어이다. 국내에서 쓰이는 현대사회의 신조어 중 하나로, 교수가 정치에 기웃기웃하면서 정계 입문을 노리느라 자기 본분을 잊게 된 경우를 일컫는 말. 다만 교수, 학자가 단순히 정치적인 성격이 강한 발언, 행적이 많아 평가가 엇갈린다고 해서 모두 이런 소리를 듣는건 아니다. 정치권에 노출이 잦더라도 강의, 연구 등 본업에서도 업적이 충실하면 그냥 활동적인 교수일 뿐.
당연하지만 부정적 의미를 갖고 있다. 정치문제에 단순히 관심이 있는 정도로는 정치교수라고 불리지는 않는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대학 교수가 갖는 학문적, 사회적 위상은 대단히 높아서, 학문적이나 정치적인 상황에서 교수 개인 혹은 교수 집단이 시국선언이나 성명문을 통해 입장을 전달하는 것은 그 메시지의 파급력이 결코 낮지 않다.
단, 이것이 차후 정계입문을 위한 준비 수준이 된다면 정치교수가 된다. 학생들에게는 선거운동 준비한답시고 강의에 빠져서 민폐가 되고, 학계에는 학자로서의 생산적인 성과를 보이질 않으니 민폐가 된다. 대학교 입장에서도 그다지 반기지는 않지만, 한창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교수를 모셔오는 것이 자기 대학교 홍보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곳에서는 도리어 모셔오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걔네들이 정계에 골인하면 대학 강단에 더 머무르려고 할지…
전술한대로 아직 대한민국은 대학 교수가 갖는 학문적 위상 및 사회적 존경도가 높고, 특히나 우리 사회 모든것을 아울러서 정책에 반영하는 창구역할을 하는 정치권에서 해당 분야의 권위자인 대학 교수들의 자문을 구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이런 식으로 학자들이 자신의 지식을 활용하는 건 물론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이것이 정책 개발을 통한 사회 공헌이 아닌, 교수들이 정치무대 진출을 위한 통로로 악용되고 이를 개인의 영달을 위해 쓰는 것이 문제시 되고 있다.
대개 교수에게 정치교수라는 멸칭은 그가 갖는 정치성향과 반대편에서 붙여주는 경우가 많다. 반면 그와 같은 편인 집단에서는 양심 있는 지성, 책임 있는 지식인 등으로 미화시키는 편. 따라서 정치교수의 리스트는 결국 각자의 정치성향에 달려 있는 셈이며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즉, 진영논리가 끼어들 여지가 있다. 예컨대 김상조, 조국 교수나 표창원 전 교수 같은 경우에도 어떤 사람은 정치교수라고 주장했지만 또 어떤 사람은 그보다 더 명예로운 표현으로 부르곤 했었다. 그 중에서 표창원의 경우는 나중에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실제로 정계에 입문했다. 게다가 김상조, 조국 교수도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자 입각했다.
비슷한 신조어로는 언론과 자주 접촉하면서 카메라 마사지를 받는 것을 즐기느라 학술 및 교육 활동을 하지 않는 방송교수(telefessor)가 있다. 접두사가 비슷한 다른 것으로는 언론인 버전의 폴리널리스트(polinalist), 연예인 판의 정치연예인(politainer)이 있다[4]. 심지어 목사 버전의 폴리패스터(polipastor)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