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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과적으로 일하는 리더는 결코 ‘나’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를 생각하지 않고 ‘우리’ 혹은 팀을 생각한다.
팀이 제 기능을 다하게 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는 것을 안다.
책임은 피하지 않고 '내‘가 받아들이지만, 명성은 ’우리‘가 얻는다.
이로 인해 믿음이 생기고 일할 수 있는 동력이 생긴다.
- 피터 드러커


나를 먼저 생각하고 나서 팀을 챙기고,
그 다음에 회사를 챙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회사를 먼저 생각하고 나서 팀을 생각하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신을 챙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따르는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받는 리더,
그래서 성과를 창출하는 리더는 분명 후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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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하고 싶다면 문제와 고통이 있는 곳으로 가야한다.
고통에 맞서면 직면한 현실과 문제를 더 명확하게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을 극복하고 해결하면 삶의 지혜를 얻을 것이다.
고통과 도전이 어려울수록 좋다.
- 레이 달리오, 브리지워터 창업 회장


“고통은 피하고 싶고 힘든 것이기는 하지만
고통이 반드시 환희나 행복의 반대인 것 같지 않아요.
고통 속에서 새롭게 깨우치는 바가 있더군요.
제가 투병하면서 이를 ‘고통의 학교’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학교에서 실습을 잘하면 한 단계 성숙한 나를 만나게 되니까요.”
이해인 수녀의 말에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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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기업은 배우는 기관(Learning institution)이자
가르치는 기관(Teaching institution)이다.
훈련과 개발은 모든 경영계층에서 확립되어야 한다.
그리고 훈련과 개발은 절대 중단되어서는 안된다.
- 피터 드러커


드러커에 의하면 경영이란 공동의 목표와 가치관을 향해
다양한 업무를 수행하는 다양한 구성원들을 통합시켜 성과를 내는 것입니다.
경영은 또한 조직과 구성원들이 새로운 요구와 기회,
그리고 변화에 맞추어 성장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구성원의 성장과 발전을 지원하는 것은
경영의 수단이 아닌 기업의 목적이 되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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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성공은 다른 사람들의 도움이 있어야만 가능하다.
자신이 잘해서 성공했다고 자만하는 순간 성장은 멈춘다.
성공하고 싶다면 당신이 이룬 모든 성과는
다른 사람의 덕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그러면 예상하지 못한 더 큰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 요코우치 유이치로, 후지겐 창업자


“은혜를 모르는 것은 근본적인 결함이다.
그렇기에 은혜를 모르는 사람은, 삶이라는 영역에서 무능한 자라고 할 수 있다.
타인의 은혜에 감사할 줄 아는 마음, 그것은 진실한 인간의 첫 번째 조건이다.”
괴테의 말 함께 보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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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여섯 명의 정직한 하인이 있네.
그 하인들이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주었네.
그들의 이름은 ‘무엇’, ‘왜’, ‘언제’, ‘어떻게’, ‘어디에서’, ‘누구’라네.
- 러디어드 커플링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수없이 많은 까다로운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때마다 다 새롭게 해결책을 찾는 것은 너무 비효율적입니다.
미리 미리 삶의 안내자가 될 자신만의 방법과 해결 원칙들을
정리하고 숙지해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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政治敎授 Polifessor
정치(Politics) + 교수(Professor)의 합성어이다. 국내에서 쓰이는 현대사회의 신조어 중 하나로, 교수가 정치에 기웃기웃하면서 정계 입문을 노리느라 자기 본분을 잊게 된 경우를 일컫는 말. 다만 교수, 학자가 단순히 정치적인 성격이 강한 발언, 행적이 많아 평가가 엇갈린다고 해서 모두 이런 소리를 듣는건 아니다. 정치권에 노출이 잦더라도 강의, 연구 등 본업에서도 업적이 충실하면 그냥 활동적인 교수일 뿐.

당연하지만 부정적 의미를 갖고 있다. 정치문제에 단순히 관심이 있는 정도로는 정치교수라고 불리지는 않는다. 그래도 대부분의 사회에서는 대학 교수가 갖는 학문적, 사회적 위상은 대단히 높아서, 학문적이나 정치적인 상황에서 교수 개인 혹은 교수 집단이 시국선언이나 성명문을 통해 입장을 전달하는 것은 그 메시지의 파급력이 결코 낮지 않다.

단, 이것이 차후 정계입문을 위한 준비 수준이 된다면 정치교수가 된다. 학생들에게는 선거운동 준비한답시고 강의에 빠져서 민폐가 되고, 학계에는 학자로서의 생산적인 성과를 보이질 않으니 민폐가 된다.  대학교 입장에서도 그다지 반기지는 않지만, 한창 유명세를 치르고 있는 교수를 모셔오는 것이 자기 대학교 홍보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곳에서는 도리어 모셔오려고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걔네들이 정계에 골인하면 대학 강단에 더 머무르려고 할지…

전술한대로 아직 대한민국은 대학 교수가 갖는 학문적 위상 및 사회적 존경도가 높고, 특히나 우리 사회 모든것을 아울러서 정책에 반영하는 창구역할을 하는 정치권에서 해당 분야의 권위자인 대학 교수들의 자문을 구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이런 식으로 학자들이 자신의 지식을 활용하는 건 물론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이것이 정책 개발을 통한 사회 공헌이 아닌, 교수들이 정치무대 진출을 위한 통로로 악용되고 이를 개인의 영달을 위해 쓰는 것이 문제시 되고 있다. 

대개 교수에게 정치교수라는 멸칭은 그가 갖는 정치성향과 반대편에서 붙여주는 경우가 많다. 반면 그와 같은 편인 집단에서는 양심 있는 지성, 책임 있는 지식인 등으로 미화시키는 편. 따라서 정치교수의 리스트는 결국 각자의 정치성향에 달려 있는 셈이며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즉, 진영논리가 끼어들 여지가 있다. 예컨대 김상조, 조국 교수나 표창원 전 교수 같은 경우에도 어떤 사람은 정치교수라고 주장했지만 또 어떤 사람은 그보다 더 명예로운 표현으로 부르곤 했었다. 그 중에서 표창원의 경우는 나중에 국회의원 선거를 통해 실제로 정계에 입문했다. 게다가 김상조, 조국 교수도 2017년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되자 입각했다.

비슷한 신조어로는 언론과 자주 접촉하면서 카메라 마사지를 받는 것을 즐기느라 학술 및 교육 활동을 하지 않는 방송교수(telefessor)가 있다. 접두사가 비슷한 다른 것으로는 언론인 버전의 폴리널리스트(polinalist), 연예인 판의 정치연예인(politainer)이 있다[4]. 심지어 목사 버전의 폴리패스터(polipastor)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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