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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과 자기집중적 태도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책에서 제시한 답을 소개해드리면 아마 허탈해하실 것 같은데요. 😅

먼저 오만에 대한 해결책은 겸손(humility)입니다.

겸손은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요?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고 지금의 내가 가진 권력도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하는 것입니다. 독재자들이 겸손하기 어려운 이유는 그들이 가진 권력이 사라질 가능성이 없다고 믿기 때문일겁니다.

다음으로 자기집중적 태도에 대한 해결책은 공감(empathy)하는 것입니다.

공감은 어떻게 생길까요? 주변 사람의 사생활을 물어보고 별 관심도 없는데 질문을 던진다고 공감이 생기는 것은 아닐 것 같아요.😅

우리의 사회관계가 사실은 상호의존적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사람은 공감능력이 생기게 됩니다. 내 직장동료의 도움이 없으면 내가 일을 할 수 없고, 내가 잘못을 저지른다면 그것이 내게 다시 돌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

그러면 우리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을 신경 쓰고 그들의 안위를 ‘내 일처럼’ 공감하게 됩니다. 

겸손과 공감을 동시에 얻는 가장 좋은 방법. 나의 지위나 권력에 대해서 전혀 모르거나 개의치 않는 사람들(예를 들자면 어렸을 때 만난 친구)에게 가서 그들과 어울리는 거죠. 혹은, 나의 도움이 필요한 약한 사람들을 만나서 그들에게 봉사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책은 추천하고 있어요.   

내가 가진 권력과 같은 무게의 균형추가 필요합니다. <스콧 갤러웨이>


모두에게 균형추가 필요하다

줄리 바틸라나 교수가 제시한 두 해결책은 사실 매우 개인적인 해답. 열린 마음으로 성장을 지향하는 사람이라면 스스로 이 두 가지를 마음에 담고 일할 수 도 있겠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쉽지 않아요. 국가나 기업은 제도를 통해서 권력자를 억제할 수 있는 방법을 도입하게 됩니다.

뉴욕대학교 경영대학원의 스콧 갤러웨이 교수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힘을 함부로 행사하지 않게 하는 방법으로 ‘균형추(Counterweight)’를 제시합니다.

균형추란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 반대편에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설명인데요. 내가 실무자라면 내게 ‘안 된다’고 얘기할 수 있는 상사. 내가 CEO라면 ‘이사회’가 이런 역할을 하게 됩니다. 어떻게 보면 ‘반대’가 직업인 사람을 곁에 두는 건데요.

스콧 갤러웨이 교수는 가정에서 배우자를 이런 ‘균형추’의 대표적인 예로 들었어요. 🤣 배우자는 우리가 정말 멍청하고 나쁜 결정을 내리지 않도록 ‘쓴소리’를 할 수 있어야합니다. 그들이 쓴소리를 하는 것은 우리를 화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갤러웨이 교수의 설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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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을 두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만이 곧 패착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스스로 자만한 줄 모르는 것이 자만의 포석이고,
아예 겸손한 척 하는 것이 자만의 중반전이며,
심지어 자신이 겸손하다고 착각하는 것이 자만의 끝내기다.
그것이 내가 30년 가까이 반상을 마주하며
수없이 많은 실전에 임하면서 비로소 깨닫고, 가장 경계했던 부분이다.
- 이창호 국수, ‘부득탐승’에서


자만은 패배와 쇠락을 불러옵니다.
문제는 ‘자만했구나’라고 깨달을 때쯤엔 이미 돌이킬 수 없을 만큼
상황이 악화되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편안하거나 잘 나가는 것을 스스로 알아서 경계할 줄 아는
성숙함과 겸손함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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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를 먹으니 주책없이
말이 막 나옵니다.
몸이 늙으니 아마도
입도 덩달아 늙어가나 봅니다.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생각 없이 한 말이 가슴에 꽂힌다니
내 입은 쪼글쪼글해지는 꽃잎,
혼자 제 입술을 가만히 만져 봅니다.


- 노은문학회의《2021 노은문학》에 실린
  박명자의 시〈비수〉전문 -


* 말이 함부로 나오는 것,
나이 지긋한 시인은 겸손하게도
나이 탓, 몸이 늙은 탓으로 돌렸지만
나이 탓이 아닙니다. 몸이 늙어서도 아닙니다.
'생각 없이' 입술을 놀리는 버릇 때문입니다.
나이 들수록 더 깊이 생각하고, 더 순한
말을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는 것은
'비수'를 품고 사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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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이란 무엇인가?
스스로를 천한 곳에 두고 스스로를 낮은 곳에 두는 것이다.
겸손은 아래에 처하고 아래는 다시 떨어지는 법이 없다.
교만은 높은 데에 있는지라 위태롭다. 높은 데로 오르는 길은 오직 겸손 뿐이다.
겸손으로 아래로 향하면 내려가는 듯 보여도 사실은 올라간다.
교만함으로 위를 향하면 올라가나 싶지만 사실은 내려간다.
- 판토하, ‘칠극’에서


겸손은 자기를 이김을 택하고, 교만은 남을 이김을 택합니다.
겸손은 죽은 뒤의 영원한 행복을 고르는데
교만은 눈앞의 잠깐 동안의 편함을 고릅니다.
겸손은 낮춤을 택하므로 편안하고 고요해서, 사람이 모두 이를 들어 올리려 하고,
교만은 올라감을 택하기 때문에 다툼을 길러, 사람들이 이를 끌어내리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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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너는 활을 당기고,
올바로 호흡하고, 표적에 집중하고,
의도를 명확히 파악하고, 우아한 자세를 유지하고,
표적 앞에서 겸손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지
알게 되었다. 하지만 어떤 세상 무엇도 우리 곁에
오래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 역시 알아야 한다.
때가 되면 네 손을 펼쳐 네 의도가 제 운명을
따라가도록 놓아주어야 한다.


- 파울로 코엘료의《아처》중에서 -


* 궁사가 한 발의 화살을 쏘기 위해서는
수많은 연습과 반복이 필요합니다. 한 발의 화살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호흡과 집중, 의도와 자세, 그리고
결과에 겸손하게 순응하는 것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에도 신이 주신 어떤 의도와 방향이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지는 하루하루가 한 발의 화살입니다. 그 한 발의 화살을 쏠 때
사선에서 선 올림픽 선수처럼 설렘과 긴장, 그러면서도
자연스럽게 활시위를 당길 줄 아는
겸손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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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은 겸손이 아니고는 이루지 못한다.
자신을 볼 때는 단점을 살피고, 남을 볼 때는 장점을 살핀다.
미처 이루지 못한 작은 선을 가지고 남의 큰 선에 견준다.
이 때문에 자신의 태만함을 자책하고 그 덕을 스스로 힘써,
자기가 남만 못하다고 말하니, 성현은 이것으로 겸손을 길렀다.
- 판토하, ‘칠극’에서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덕을 닦는 사람은 남이 알아주는 것을 경계할 뿐 아니라,
스스로 알아주는 것을 더 더욱 경계한다.
감추는 것을 귀하게 여길 뿐 아니라, 아주 잊어버리는 것을 더 귀하게 친다.
나의 덕을 남의 눈에 보이지 않게 하였더라도 다시금
자신의 눈에서도 숨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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