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은지심과 인내심을 기르려면 누군가 의도적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은 측은지심과 인내심을 기를 수 있는 더 없이 좋은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은 우리 스승조차 해줄 수 없는 방법으로 우리의 내적인 힘을 단련시켜준다. - 달라이 라마 타인과 갈등 없는 세상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갈등이 두려워 회피하면 일시적 봉합은 되지만 더 큰 문제를 불러오게 됩니다. 사실 그 자체 보다는 그에 대한 해석이 더 중요합니다. 갈등 역시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긍정의 결과를 가져옵니다. 달라이 라마는 갈등을 ‘적의 선물’이라고 말합니다.
생에 크고 작은 인연이란 따로 없다. 우리가 얼마나 크고 작게 느끼는가에 모든 인연은 그 무게와 질감, 부피와 색채가 변할 것이다. 운명이 그러하듯 인연의 크고 작음 또한 우리들의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 아닐까? - 최인호의《인연》중에서 - * 스치듯 맺은 작은 인연이 평생 이어지는가 하면 오래 지속된 큰 인연이 사실은 악연인 경우도 있습니다. 인연이란 삶의 보너스와도 같은 선물입니다. 얼마나 잘 가꾸고 다듬어 가느냐에 따라 자라기도 하고 시들기도 합니다. 빛이 되기도 하고 빛을 가리는 그림자가 되기도 합니다.
제 생각은 이렇습니다. 창업자는 반드시 반대를 보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모두가 당신에게 바보라고 할 때, 바보처럼 그것을 밀어 붙여야 합니다. 종종 아무도 믿지 않은 것에 당신이 강력한 믿음을 가진다면, 그것은 현실이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 넷플릭스 창업회장 리드 헤이스팅스 (‘콘트래리언’에서 인용)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은 그 아이디어가 성공할 때 까지는 괴짜 신세를 면치 못합니다. 그러나 누구나 찬성하는 아이디어는 큰 성공을 가져올 수 없습니다. CNN 테드 테너 회장은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할 때 사람들이 비웃지 않는다면 그 아이디어는 좋은 것이 아닐 확률이 높다”고 말합니다.
문득 내 마음 안에 있는 상처 입은 아이가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그 아이를 사랑스러운 눈길로 다독이자 어느새 보채던 아이가 새근새근 잠이 든다. 그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다른 사람의 사랑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사랑이었던 것이다. 내가 좀더 그 아이에게 너그러워진다면 그 아이는 멈추었던 성장을 계속해 나갈 것이다. - 김혜남의《어른으로 산다는 것》 중에서 - * 내 안의 '아이'가 아직도 보채고 있나요? 저 먼 옛날의 상처 때문에 아직도 울고 있나요? 이제는 더 보채지 않게 사랑의 빛을 보내야 합니다. 우는 아이에서 웃는 아이로, 상처받은 아이에서 상처를 이겨낸 아이로 자라게 해야 합니다. 내 안에 있는 아이가 잘 자라나야 나도 잘 성장할 수 있습니다.
훌륭한 통치자가 되려면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듣는 훈련을 하셔야 합니다. 통치자가 백성들의 마음속 생각을 잘 듣고, 드러내지 않는 그들의 심정과 표현하지 않는 고통, 말하지 않는 불만을 들을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무엇이 문제인지 이해할 수 있고 백성들이 진실로 원하는 일들을 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 김위찬, ‘리더십 우화’중 (‘필 잭슨의 일레븐 링즈’에서 재인용) 구성원의 소리를 제대로 듣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직원들이 편안하게 아무 이야기나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들리지 않는 것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아닌 상대의 입장에 설 때 비로소 들리지 않는 것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녀가 나를 아주 유심히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녀는 내 팔을 어루만지거나 목을 긁어주면 내가 차분해진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녀는 또 내 머리를 긁어주고 내 귀를 문질러주었다. 그녀의 그런 어루만짐에 나는 편안해졌고, 안절부절 못하는 일이 줄었다. 전에는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기쁨과 고요가 있다. - 존 엘더 로비슨의《나를 똑바로 봐》중에서 - *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난치병 환자의 체험글입니다. 유심히 지켜보고 어루만지는 것만으로도 편안해지고 아픈 몸과 마음에 기쁨과 고요가 찾아옵니다. '건강하다'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은 멀쩡해 보이지만 속은 깊이 멍들고 지쳤을 때 누군가 사랑과 정성으로 지켜보고 어루만지면 다가오던 병도 한걸음 물러갑니다. 기쁨과 고요가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