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어 karman의 번역. 갈마(羯磨)라 음역(音譯)한다. 조작(造作)의 뜻. 행위(行爲)ㆍ소작(所作)ㆍ의지(意志)에 의한 신심(身心)의 활동. 의지(意志)에 의한 신심(身心)의 생활을 의미한다.
①일반으로 업(業)을 신(身)ㆍ어(語)ㆍ의(意)의 삼업(三業)으로 나눈다. 유부(有部)의 해석에 따르면, 이러 이러한 것을 하려고 하는 뜻이 의업(意業)이고, 그 의지를 신체적 행동과 언어적 표현으로 나타낸 것이 신업(身業)과 어업(語業, 구업(口業)이라고도 한다)이라고 한다. 또 업(業)을 의지(意志)의 활동인 사업(思業)과 사업(思業)이 끝나고서 행하는 사이업(思已業)의 이업(二業)으로 나누는데 이 경우, 사업(思業)은 의업(意業)이고, 사이업(思已業)은 신(身)ㆍ어(語)ㆍ이업(二業)이다. 삼업(三業)으로서의 작용의 본체(本體, 업체(業體)ㆍ업성(業性))에 대해서, 유부(有部) 등에서는 의업(意業)은 사(思, 의지(意志))라고 한다. 불교 본래의 입장은 후자라고 생각된다.
모든 사람이 너에게 ‘너는 골프 천재다.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한 사람이다’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을 때 바로 연습장으로 달려가라. 달려가서 이전 보다 더 훈련에 열중하라! -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타이거 우즈에게
제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나 기업도 잠시 연습을 게을리 하게 되면 바로 뒤쳐집니다. 한편, ‘위대한 변화’의 저자 제임스 마틴(James Martin)에 의하면 ‘매주 1%씩 개선한다면 5년 안에 14배라는 경이로운 향상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끊임없이 조금씩 조금씩 개선시켜 나가는 자세가 어느 때 보다 필요한 때 입니다.
극도의 고통은 타인과 나눌 수 없다. 고통이 세상의 전부가 되었기 때문에 그 무엇도 들어올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깨달을 때에는 우리도 아프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그 고통을 느낀다고 해도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이 느끼는 고통과 그 고통에 대한 우리의 반응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그러한 경험은 자신과 모든 타인들 사이를 넘을 수 없는 심연을 보여준다.
- 라르스 스벤젠의《외로움의 철학》중에서 -
* 고통은 매우 주관적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별것 아닌 고통도 어떤 사람에게는 견줄 수 없는 극한의 고통일 수 있습니다. 특히 타인의 고통은 측량하기 어렵습니다. 그 때문에 타인의 고통을 가벼이 여기기 쉽습니다. 중요한 것은 공감입니다. 함께 나누는 마음입니다. 그래야 자신의 고통을 타인에게 드러낼 수 있는 용기를 낼 수 있습니다. 그 용기를 응원하고 함께 풀어가야 성숙한 사회입니다.
자바 스크립트는 서로 다른 도메인에 대한 요청을 보안상 제한합니다. 이 정책을 동일근원정책(Same-Origin Policy, SOP) 정책이라고 하며, 이러한 정책으로 인해 생기는 이슈를 cross-domain 문제라고 합니다. 개발을 하다보면 어쩔 수 없이 다른 도메인으로부터 데이터를 가져와야 하는 경우가 많기에 많은 사람들이 cross-domain 이슈를 겪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사용할 수 있는 것이 JSONP(JSON with Padding)입니다. 처음 JSONP를 접했을 때 잘 정리가 되지 않았던, 사용할 때 명확히 알아야 할 것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우리 자신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음을 깨달을 때 그만두는 능력이야말로 우리의 삶을 바꾸는데 필요한 힘이다. 이것이 중요하다. 그만두는 것은 힘이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의 손실을 막음으로써 자신을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해주는 일에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를 다시 할당할 수 있다. - 리치 칼가아드, ‘레이트 블루머’에서
무언가를 중도에 그만두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만둘 때 우리는 죄책감, 굴욕감 같은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 적절한 이유가 있어 그만둘 경우, 그것은 포기가 아닙니다. 진정으로 성공한 사람들은 ‘똑똑한 중도 포기자들’로, 이들은 현재의 길이 자신의 최종 목표에 다가가는데 더 이상 도움이 안된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과감하게 방향을 수정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