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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

사랑도 기적이다 나는 여러 가지의 작은 기적을 경험한다. 아침에 왼쪽 다리를 침대 바닥에 내려놓을 때 고통이 느껴지지 않을 때, 그것은 작은 기적이다.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위해 부엌으로 들어가면서도 고통을 느끼지 않는 것, 그 또한 작은 기적이다. 수영장으로 들어가 느긋하게 수영을 즐기는 것, 사실상 커다란 기적이다. 한동안 그 어떤 것도 가능하지 않았던 시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 메흐틸트 그로스만의《늦게라도 시작하는 게 훨씬 낫지》중에서 - * 눈을 뜨는 것, 시각장애인에게는 그 자체가 기적입니다. 새소리를 듣는 것, 청각장애인에게는 세상이 바뀌는 기적입니다. 대다수 사람에게는 그 기적이 매일매일 일상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놓치고 살 뿐입니다. 기적은 먼 곳에 있지 않습니다. 다쳐서, 아파서, 슬퍼서, 어제까지 .. 더보기
장애로 인한 외로움 장애인으로 사는 일이 힘든 건 장애 그 자체보다도, 장애로 인한 외로움에서 비롯한다. 시각장애인은 사람들이 자신을 쳐다봐도 시선을 알아차릴 수 없다. 청각장애인은 사람들이 바로 옆에서 자기 얘길 해도 말을 들을 수 없다. 따라서 그토록 고독하다. 또 하나의 아픔은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장애가 있으면 못 할 것이라고, 안 될 것이라고 미리 단정한다. 장애 하나로 모든 것이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하곤 한다. - 아지오의《꿈꾸는 구둣방》중에서 - * 장애인이 겪는 고통과 외로움을 장애가 없는 사람들은 결코 실감하지 못합니다. 편견과 선입관도 무섭습니다. 모든 것이 불가능할 것이라고 무조건 단정하는 것도 장애인에게 안겨주는 아픔입니다. 그러나 장애가 있기 때문에 열리게 된 감성적 영적 능력을 보통 사.. 더보기
극도의 고통은 타인과 나눌 수 없다? 극도의 고통은 타인과 나눌 수 없다. 고통이 세상의 전부가 되었기 때문에 그 무엇도 들어올 여지가 없기 때문이다. 타인의 고통을 깨달을 때에는 우리도 아프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그 고통을 느낀다고 해도 좋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인이 느끼는 고통과 그 고통에 대한 우리의 반응 사이에는 엄청난 간극이 있다. 그러한 경험은 자신과 모든 타인들 사이를 넘을 수 없는 심연을 보여준다. - 라르스 스벤젠의《외로움의 철학》중에서 - * 고통은 매우 주관적입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별것 아닌 고통도 어떤 사람에게는 견줄 수 없는 극한의 고통일 수 있습니다. 특히 타인의 고통은 측량하기 어렵습니다. 그 때문에 타인의 고통을 가벼이 여기기 쉽습니다. 중요한 것은 공감입니다. 함께 나누는 마음입니다. 그래야 자신의 고통을.. 더보기
극한의 고통 경험에는 항상 타인과 온전히 공유할 수 없는 개인적 요소가 포함되어 있게 마련이다. 고통도 타인과 나눌 수 없는 것이다. 고통이 어느 지경까지 가면 고통을 겪는 이의 세계와 언어를 파괴한다. 고통은 말을 박살 낸다. 어느 정도 아프면 무엇 때문에 아프다는 말을 할 수 있지만 고통이 너무 압도적일 때에는 그렇게 말하는 능력조차 잃게 된다. - 라르스 스벤젠의《외로움의 철학》중에서 - * 극한의 고통에서 나오는 것은 언어가 아닙니다. 비명입니다. 울부짖음입니다. 아무도 대신할 수 없고 누구와도 나눌 수 없습니다. 오로지 혼자만의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곁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고통의 질감은 달라집니다. 자기 고통처럼 같이 아파하고 눈물짓고 어루만지면, 그런 사람 하나 있으면 그 어.. 더보기
고통 뒤에는 금광이 숨겨져 있다 모든 고통 뒤에는 금광이 숨겨져 있다. 고통이 없으면 금광은 발견될 길이 없다. 고통을 겪지 않은 사람은 금광이라는 존재 자체를 알지 못한다. 실패하는 사람은 늘 고통 뒤에 숨지만, 금광이 거기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결코 알지 못한다. 성공하는 사람은 늘 고통의 앞에 서 있지만, 고통의 뒤에 자신이 원하는 황금이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 보도 새퍼, ‘멘탈의 연금술’에서 어떤 일을 할 때는 어김없이 고통과 시련이 따릅니다. 그것들은 진짜 고통과 시련이 아니라 성공으로 가는 하나의 과정이 고통과 시련이라는 가면을 쓰고, 나타났을 뿐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고통 뒤에는 금광이 숨겨져 있습니다. 더보기
가벼운 아령으로는 근육을 키울 수 없다 감당하기 어려운 시련과 고통이 아니면 우리는 성장할 수 없다. 근육을 키우려면 감당하기 어려운 무게를 들어야 한다. 어려운 과제를 해결할 때마다 우리는 그만큼 강해진다. 그만큼 성장한다. 뿌리를 단단히 박고 하늘을 찌를 듯이 서있는 나무들을 보라. 그들은 모두 폭풍우를 견딘 모습이다. - 보도 새퍼, ‘멘탈의 연금술’에서 가벼운 아령으로는 결코 근육을 키울 수 없습니다. 가벼운 아령으로 근육을 키울 수 없다면 어려운 시련과 문제를 만났을 때 이를 기꺼이 받아들이고 기뻐해야 하지 않을까요? 어려운 시련과 문제야말로 근육을 키울 수 있는 최고의 아령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보기
글쓰기 근육 글쓰기는 부단한 연습이 필요하다. 글쓰기에 필요한 근육은 규칙적인 운동을 통해서만 키울 수 있고 고생 없이는 조금도 커지지 않는다. 시작부터 잘못된 길로 갈 수도 있고, 가다가 막다른 골목에 이를 수도 있으며, 어느 순간 자기의심에 빠져버릴 수도 있다. - 줄리언 반스 외의《그럼에도 작가로 살겠다면》중에서 - * 글쓰기도 근육이 필요합니다. 그러려면 '규칙적인 운동'이 필요합니다. 그'규칙적인 운동'의 기본은 독서입니다. 더불어 '고통의 경험'도 중요합니다. 좌절, 실패, 상실, 상처, 깊은 슬픔의 경험도 글쓰기 근육을 키우는 자양분입니다. 그다음은 습작의 반복입니다. 습작의 반복도 그 자체가 고통입니다. 그 고통을 통해 글쓰기 근육은 더욱 단단해집니다. 더보기
절대 잊을 수 없는 날 사람은 누구나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이 있다. 살아오면서 자신의 삶에 강렬한 충격을 주고, 기억 속에 깊은 흔적을 남긴 그런 날을, 사람들은 품고 산다. 그것은 좋은 경험일 수도 나쁜 경험일 수도 있다. 대개의 경우 잊을 수 없는 건 아픈 경험이기 쉽다. 나 역시 마찬가지여서 내 몸과 마음에서 떠나지 않는 날이 몇 있다. 그 중 가장 아픈 건 1995년 6월 8일이다. 이날, 내 아들 대현이는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 김종기의《아버지의 이름으로》중에서 - * 참척(慘慽)! 자식이 먼저 죽는 고통을 이르는 말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의 죽음, 그것도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린 자살. 어찌 그 날, 그 아픔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 그야말로 청천벽력입니다. 날벼락도 그런 날벼락이.. 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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