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은
정신 질환이 아니며,
정신 질환이 되어서도 안 된다.
누군가와 진실로 맺어지지 못하는 고질적이고
고통스러운 경험이 당사자의 모든 인간관계에
영향을 줄 때, 그리하여 어떤 관계도 가깝다고
보지 못할 때, 외로움은 병적 성격을 띨 수 있다.
하지만 수줍음과 사회 불안이 별개이듯이,
그런 유의 외로움조차도 병리학적
현상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


- 라르스 스벤젠의《외로움의 철학》중에서 -


* 외로움은 숙명입니다.
누구나 그 숙명 속에 살아갑니다.
사람은 저마다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있지만
홀로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홀로 오래 있으면
병적 상태나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친구가 필요합니다. 당신의 외로움은
친구가 덜어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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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도 그렇지만
고통도 사회적 성격이 강해서
다른 사람들에게로 전염된다. 따라서
먼저 자신의 고통을 보살펴서 주변으로
퍼져나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분노한 사람이
해야 할 일이다. 게다가 자신의 분노 뒤에 어떤
고통이 숨어 있는지 스스로 인식할 때에만
그 분노를 제어할 수 있다.


- 프랑크 베르츠바흐의《무엇이 삶을 예술로 만드는가》중에서 -


* 코로나 바이러스도 그렇지만
사람의 고통과 분노도 전염력이 강합니다.
분노는 말 그대로 불(火)과 같아서 잘못하면
산야를 모두 태울 수 있습니다. 번지기 전의 초기
진화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고통이 분노로,
그 분노가 다른 사람에게 전염되어, 더 큰
고통, 더 큰 불로 커지지 않도록
제어해야 합니다. 그 방법의
하나가 명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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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게 고통이라는 건 벗어날 수 없는 진리예요.
새는 진공 상태에서 날 수 없습니다.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선 공기 저항이 필요하죠.
인간도 고통이라는 저항을 통과해야 앞으로 나갑니다.
고통을 ‘바람’이라고 생각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 기시미 이치로, ‘미움 받을 용기’ 저자

기시미 이치로는 말합니다.
“인간은 늘 배가 고프죠. 어떤 굶주림이든 완전히 채울 수는 없어요.
다행히 욕망이 아니라, 의미를 추구하는 ‘그레이트 헝거(great hunger)'는
굶주림 덕분에 인생이 풍요해지죠.”
끝없이 고통을 맛보고 좌절을 경험하면서 의미를 추구하는 삶이
진정 가치 있는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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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욕이나 상처를 받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는 누구나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마음의 상처가 무엇인지 물어보면 사람마다 
말이 다르다. 마음의 상처는 다양한 형태의 고통을 
유발한다. 쿡쿡 찌르는 느낌, 살을 에는 듯한 통증, 
바늘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따르기도 한다. 
혹은 누가 세게 가슴을 누르는듯도 하고, 
위장에 돌이 가득 들어 있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마음의 상처'는 항상 
내 존재 전부를 공격한다.

- 도리스 볼프의《심장이 소금 뿌린 것처럼 아플 때》중에서 - 


* 지금 많은 사람들이 
아픈 상처로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육체를 넘어 마음의 상처까지 깊어졌습니다.
'바늘로 찌르는 듯한 아픔'으로도 부족합니다.
우리 일상을 공격해 삶 전체를 뒤흔들고 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가 겹치면 더 위험합니다.
그 두려움에 휩쓸려 가지 않도록 
서로 붙잡아 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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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고통, 깊은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은 진정한 어른이 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여섯 살에 어른이 되기도 하지만 누군가는 
예순이 훌쩍 넘어서도 아이로 남아 있다. 부모가 
세상을 떠나거나, 자기 몸에 심각한 이상이 
생기거나,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이 
큰 병 또는 죽음을 맞거나, 이혼 또는 
사업의 실패, 도덕적 문제로 삶이 
무너지면 그제야 비로소 
어른이 된다. 

- 스티브 레더의《고통이 지나간 자리, 
당신에겐 무엇이 남았나요?》중에서 - 


* 나이가 들었다고
모두 어른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어른다운 어른이 진짜 어른입니다. 
어른다운 어른은 고통의 경험과 비례합니다.
고통의 나이, 시련의 시간, 무너지고 다시 일어선 
경험들이 진정한 어른을 만듭니다. 뒤따라 오는 
젊은이들에게 '고통은 견딜 만한 것'이라고
일러주는 안내자가 될 수 있습니다.
어른다운 어른의 역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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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직도
존재가 무엇인지 잘 모른다.
의식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하지만
희열이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다. 그것은
온전하게 현재에 존재하는 느낌, 진정한
나 자신이 되기 위해 해야 하는
어떤 것을 하고 있을 때의
느낌이다.

- 조셉 캠벨의《블리스 내 인생의 신화를 찾아서》중에서 -


* 2019년 한해를 마감하는 마지막날입니다.
올 한 해도 무고들 하셨는지요. 기쁨과 희열을 맛본
순간들은 얼마나 있으셨나요? 풍요와 안락의 시간도
기쁨을 안겨주었지만, 한 번 돌이켜 보십시오. 궁핍과
고통의 시간도 돌아보니 의미가 있었지 않습니까?
그 힘든 시간을 오직 현재에 존재하는 마음으로
잘 견디어낸 자기 자신이 희열이지 않습니까?
내가 나를 이겨낸 기쁨. 그보다
더 큰 희열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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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줌의 소금을 
작은 물컵에 넣으면 매우 짜지만 
넓은 호수에 넣으면 짠맛을 모르듯, 
인생의 고통도 소금과 같으니 
작은 물컵이 되지 말고 
큰 호수가 되라. 

- 진우의《두려워하지 않는 힘》중에서 -

* 염도는 
소금의 양이 아닙니다.
그릇의 크기에 따라 달라집니다.
인생의 고통도 그 부피나 크기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그릇에 따라 극단으로 
바뀝니다. 작은 물컵이면 언제나 찰랑거리고
큰 호수면 언제나 넉넉하게 출렁입니다. 
큰고기를 낚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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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G 고통,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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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고통이고 고통의 원인은 무지다. 

그러나 고통과 무지는 하나의 현상일 뿐 영원불변의 무엇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 타파될 수 있는 무엇이다. 붓다는 무지가 타파되어 고통이 극복된 상태, 그것을 열반(nirvna)이라 불렀다. 산스크리트 ‘니르바나’에서 니르(nir)는 ‘없다’, ‘아니다’, ‘없어지는(out)’ 등의 뜻을 갖는 접두어이고, 바나((vna)는 ‘불꽃’, ‘불어 끄다(to blow)’ 등으로 해석된다. 그러니 말뜻으로 보면 열반이란 ‘불어서 끄다, 불어서 꺼버린 상태, 불꽃이 꺼진 상태’의 뜻을 갖는다.
 
여기서 불꽃은 앞서 말한 소유와 영원을 향한 욕망을 상징한다. 물론 그 욕망이란 불길의 연료는 무지다. 그러니까 열반이란 무지라는 연료가 더 이상 공급되지 않아 욕망이란 불길이 사위어 버린 상태를 의미한다. 욕망의 불길이 꺼졌다면 그곳엔 더 이상 고통이 없고 고통이 없는 상태란 바로 행복을 의미한다. 열반이란 현대의 언어로 말하자면 행복이다.
 
고통 무지는 현상에 불과할 뿐
 
영원불멸 하지 않아 타파 가능
 
“춘다여, 이 세상은 원래 무상한 것이다 … 나는 진실을 터득하여 일체의 고통에서 벗어났다. 그러므로 내겐 이제 노병사(老病死)가 모두 없다 … 춘다여, 이것이 모든 여래의 떳떳한 법이다.”
 
“내 이제 진리로 그대들에게 말하노라. 이제 나는 나의 사부대중을 위하여 열반의 덕을 말하리라. 비구들이여, 열반에는 네 가지 덕이 있으니, 영원함(常)과 행복(樂)과 참나(我)와 청정함(淸淨)이다. 여래의 법신은 영원한 것이요, 열반은 행복이며, 여래는 언제 어디서나 참 나로 존재하며, 여래의 바른 법은 청정한 것이다.”
 
<장아함>의 말씀에서 우리가 가장 분명하게 알 수 있는 것은 부처님은 열반을 성취함으로써 태어남과 늙음과 병듦과 죽음을 모두 초월하여 완전한 행복에 도달하였다는 사실이다. 부처님께서 도달하신 그 열반의 경지는 영원하고 행복하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우리 모두의 참 모습이다. 청정하다는 말은 일체의 어떠한 욕망이나 무지가 전혀 없어 완전무결하다는 뜻이다. 거듭 말하지만 이는 무지를 타파하여 욕망이 극복됨으로써 가능한 경지이다.
 
또한 우리는 지금 부처님께서 남기신 말씀을 따라 언어와 개념으로 열반을 논하지만 사실 이 경지는 오로지 체험으로만 도달할 수 있다. 우리는 부처님의 말씀에 따라 그러한 경지가 가능하다는 것을 사실로 믿을 뿐이다.
 
그러나 열반이 죽음마저도 초월된 어떤 경지라 해서 아예 죽지 않고 영원히 사는 무엇은 아니다. 열반은 기독교가 말하는 육신의 부활에 이은 영생(永生)이나 도교가 말하는 장생불사(長生不死)가 아니다. 도리어 초기불교는 육신의 죽음이야 말로 완전한 열반(無餘涅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열반은 소유와 영원이 도무지 불가능하다는 세계와 인간의 참 모습(實相)을 투철하게 깨달아, 그 결과 욕망으로부터 자유롭게 됨으로써 성취하게 되는 완전한 마음의 평화, 즉 절대적 행복인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로지 깨달음이라고 하는 체험으로써만 도달할 수 있다.
 
붓다는 열반이라고 하는 완전한 행복의 경지를 몸소 보여줌으로써 인간을 향한 무한 신뢰와 희망을 선사하신다.

#

어느 맑은 봄날, 바람에 이리저리 휘날리는 나뭇가지를 바라보며 제자가 물었다.
스승님 저것은 나뭇가지가 움직이는 겁니까 바람이 움직이는 겁니까
스승은 제자가 가리키는 곳은 보지도 않은 채 웃으며 말했다.
무릇 움직이는 것은 나뭇가지도 아니고 바람도 아니며 네 마음 뿐이다.

#

영화광 김지운의 영화 <달콤한 인생>은 이렇게 스승과 제자의 선문답으로 시작된다.


선우는 백사장에게 묻는다.

"다 집어치우고 한 가지만 물어보자. 넌 도대체 나한테 왜 그런 거냐?"

그렇게 묻는 선우의 아랫배에 백사장은 단검을 몇차례 꽂는다. 송곳 같은 단검이 몇차례 슉슉 오가자 갑작스런 통증을 참지 못한 선우가 빙상장 위에 고꾸라진다.

"그뭐야 그 표정은? 억울해, 억울한 거야? 네가 이렇게 된 이유를 모르겠지? 어 자꾸 딴 데서 찾는 거지. 아, 그럼 날 찾아 오면 안되지. 이 사람아. 마,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

백사장을 해치운 선우는 스카이라운지에 올라간다. 선우는 보스와 대면한다. 선우가 백사장에게 묻듯 보스가 선우에게 묻는다. 왜 그랬냐고! 그리고 선우가 보스에게 묻는다. 7년 동안 당신 밑에서 개처럼 일한 나에게 왜 그랬냐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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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고통을 피하고 당장의 즐거움을 얻으려 하기 때문에
훗날 고통을 받게 된다.
- 미셀 드 몽테뉴 

“장기적 비전을 위해 단기적 손해를 감수한다. 이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빌 게이츠 MS 창업회장의 말입니다.
단기 이익과 장기 이익은 충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기적 손해를 감내할 줄 아는 사람들이
인생이라는 장기 레이스에서 승자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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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다음과 같은 
고통도 견딜 수 있다. 
부상당한 퇴역군인이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시이다. 
"나는 부서졌어. 만신창이가 됐어.
내가 싸울 수 없는 전투를 약이 대신 싸워주고 있지.
모르핀 대 고통의 전투.
내 몸은 전장. 내 정신은 사상자."

- 스티브 레더의《고통이 지나간 자리, 당신에겐 무엇이 남았나요?》중에서 -


* 부상당한 퇴역군인.
그는 아직도 부서진 몸으로
고통의 전투를 하고 있습니다.
만신창이가 된 채 전장터를 헤매고 있습니다.
한국의 근현대 역사, 그 상처 난 역사의 치유,
결국은 우리 한국인 스스로의 몫입니다.
다시는 부서지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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