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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비 오는 날,
오케스트라 창설자이자 음악 감독인
이상재 교수와 점심 식사를 겸해 만났다.
일곱 살 때 사고로 시각을 잃은 그는 마지막 빛이
사라질 때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식사 후
택시 타는 곳까지 우산을 들고 바래다주면서 물어봤다.
비 오는 날에는 많이 불편하시겠다고. 그러자 그가 답했다.
"이사장님, 우산 쓴 시각 장애인을 보신 적 있으세요?
곁에서 받쳐주지 않는 한 우리는 우산을 쓰지 않아요.
얼굴로 느끼는 감각이 둔해지기 때문이지요."
안개비, 보슬비, 가랑비, 장대비를 골고루
맞아 보니 그가 말한 감각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 김인식의《자유로운 영혼으로 혼자서 걸었습니다》중에서 -


* "마지막 빛이
사라질 때를 또렷이 기억한다."
이 대목을 읽는 순간 전율이 일었습니다.
"우산 쓴 시각 장애인을 보신 적 있으세요?"
이 질문에도 망연해졌습니다. 그리고 미안했습니다.
생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아린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얼굴에 떨어지는 빗방울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
그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일부러 우산을 쓰지 않는 사람들의
무궁한 세계를 과연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서
미안했습니다. 때로는 우산을 내던지고 얼굴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안개비인지, 보슬비인지
느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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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릿속에
아버지를 떠올리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내 손이 수화를 하고
있음을 발견하곤 한다. 그리고 기억의
안개 저편에서 대답을 하는
아버지의 손이 보인다.


- 마이런 얼버그의《아버지의 손》중에서 -


* 청각 장애 때문에
오로지 수화로만 대화를 하던 아버지.
돌아가신 아버지를 생각하면 '입' 대신
'손'이 먼저 머릿속에 떠오르는 아들.
그 아버지의 손에, 그 아들의
영혼이 깃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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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기억이
있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것을 계속 끌고 가는 것일 텐데
이 소중한 기억은 휘발성이 남달라서
자꾸 사라지려 든다. 불행은 접착성이 강해서
가만히 두어도 삶에 딱 달라붙어 있는데, 소중한
기억은 금방 닳기 때문에 관리를 해줘야 한다.
소중한 기억이 지뢰처럼 계속 폭발할 수 있도록.
그러면 소중한 비밀은 일회성에서 벗어나
간헐적으로 나를 미움에서
구출할 수 있다.


- 문보영의《준최선의 롱런》중에서 -


* 소중한 것일수록 휘발성이 강합니다.
잘 날아가고 너무 쉽게 잊혀집니다. 그러다가
그것을 잃었을 때 비로소 소중함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맑은 공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평범한 일상,
일상의 행복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 그 일상을
잃었을 때 알게 됩니다. 소중한 것은 결코
일회성이 아닙니다. 우리 삶 속에 깊숙히
들어와 매일매일 반복됩니다.
잊어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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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마신다
국화차를 마신다
꽃향이 낯설다고 말하지 않는다
참 좋다고
참 편안하고 여유가 있다고

잠시,
누군가가 떠오르더라도
굳이 말하지 않아도 좋다
애써 말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럴 때
그냥
향이 참 좋다고 말하면 그만이다


- 심재숙의 시집《장미, 기분이 너무 아파요!》에 실린
시〈향이 참 좋다〉전문 -


* 차 한 잔이 주는 여유.
잠깐멈춤의 참 귀하고 편안한 시간입니다.
여러 어려움과 고뇌와 기억이 엇갈리지만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압니다.
향이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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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가리켜 고해라고 한다. 
그렇기에 삶의 쓴맛을 잊게 해주는 
달콤한 순간이, 선물처럼 인생에서 한 번쯤은 
찾아온다. 누군가는 그 마법과 같은 시간을 반추하며 
남은 생의 고해를 견딘다. 누군가는 자신의 삶이 
그때의 기억에 갇힐까 봐 두려워하며 고해로 
나아간다. 누구에게나 삶에 의미가 되는 
기억이 하나쯤은 있다. 


- 신창호의《정약용의 고해》중에서 - 


* 성공의 기억, 실패의 기억.
정반대의 서로 다른 기억인 것 같아도
사실은 하나입니다. 성공의 순간이 실패의 시작일 수 있고,
실패의 순간이 더 큰 성공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고해로만 
여겨졌던 기억도 어느 순간 가장 행복했던 기억으로 
바뀌어 다가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삶에서 
경험하는 매우 의미 있는 기억의 하나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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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죽을 때 떠오르는 장면은

프레젠테이션 석상에서 박수 받는 순간이 

아닐 겁니다. 아마 어느 햇살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어느 나뭇잎이 떠오를 것 같고, 

어느 달빛이 떠오를 것 같습니다.


- 박웅현의《책은 도끼다》중에서 - 



* 나는 죽을 때 무엇을 떠올릴 것인가.

두렵지만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질문입니다.

지나온 삶을 돌이키는 순간 후회와 미련을 떠올리기 

보다는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 사랑했던 모습들을 

누구나 기억하고 싶을 것입니다. 마지막 기억이 

아름답도록 오늘을 더 사랑하겠습니다.

오늘을 더 음미하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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