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비 오는 날,
오케스트라 창설자이자 음악 감독인
이상재 교수와 점심 식사를 겸해 만났다.
일곱 살 때 사고로 시각을 잃은 그는 마지막 빛이
사라질 때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식사 후
택시 타는 곳까지 우산을 들고 바래다주면서 물어봤다.
비 오는 날에는 많이 불편하시겠다고. 그러자 그가 답했다.
"이사장님, 우산 쓴 시각 장애인을 보신 적 있으세요?
곁에서 받쳐주지 않는 한 우리는 우산을 쓰지 않아요.
얼굴로 느끼는 감각이 둔해지기 때문이지요."
안개비, 보슬비, 가랑비, 장대비를 골고루
맞아 보니 그가 말한 감각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 김인식의《자유로운 영혼으로 혼자서 걸었습니다》중에서 -
* "마지막 빛이
사라질 때를 또렷이 기억한다."
이 대목을 읽는 순간 전율이 일었습니다.
"우산 쓴 시각 장애인을 보신 적 있으세요?"
이 질문에도 망연해졌습니다. 그리고 미안했습니다.
생애 단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아린 질문이었기
때문입니다. 얼굴에 떨어지는 빗방울로 세상을 보는 사람들,
그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해 일부러 우산을 쓰지 않는 사람들의
무궁한 세계를 과연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그래서
미안했습니다. 때로는 우산을 내던지고 얼굴에
떨어지는 빗방울이 안개비인지, 보슬비인지
느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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