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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어떻게 될까요?’라고 남에게 질문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어떻게 만들고 싶은가?’라고 자문해야 할 것이다.
미래라는 것은 예측하기보다 오히려 비전으로 생각하며 그려내야 한다.
예측은 빗나가기 때문이다.
- 야마구치 슈, ‘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에서


앨런 케이는 “미래를 예측하는 최선의 방법은
미래를 창조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상상력은 미래의 예고편이다”고 했습니다.
미래는 예측하고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상상하고 꿈꾸고 열정을 다해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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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분들이 이런 말씀을 하세요. 어려운 것은 상식에 비교해 보면 되는 것 아니냐고 말이죠. 심플! 사실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상식적 원칙이 없는 것은 아닌데요. 바로 공리주의(utilitarianism)입니다. 공리성(utility)을 가치 판단의 척도로 삼는 것을 말해요. 옳고 그름은, 즉 인간의 행복을 늘리는데 얼마나 기여하는가에 달려있다는 사상이에요. 쉽죠?

 

예를 들어, 우리가 자본주의를 받아들인 이유는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면 결국 전체 공리가 커진다는 믿음이 있고요. 공산주의 역시 사적이익만 추구할 경우 공리가 작아진다는 믿음에 기반을 합니다. 즉 최대 공리가 곧 올바름의 크기가 됩니다. 예를 들어 소각장을 설치하는 문제가 있다면, 서울 보다는 사람이 적은 곳에 만드는 것이 올바르다고 볼 수 있는 것이 공리주의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복잡해요.

 

최대 공리주의: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 많이 들어보셨죠. 하지만 이런 비판이 있어요. 인구가 1만 명인데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인 국가(총 공리는 1억달러), 반면 인구가 2000만명인데 1인당 국민소득이 10달러인 최빈국(총 공리는 2억달러)가 있다면, 어느 쪽이 더 옳은(좋은) 국가일까요?

 

평균 공리주의: 그래서 평균을 가늠자로 삼자라는 아이디어도 있어요. 한데 문제는 있어요. 인구 1만명에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인 국가와 인구 100만명에 1인당 국민소득이 1만달러인 국가를 생각해 볼게요. 무엇이 더 좋은 국가일까요?

 

비판적 공리주의: 평균 공리주의의 문제를 하나 더 들어볼게요. 어떤 사회는 100명이 9씩 공리를 누리지만 주변 공사장 소음으로 공리가 1씩 줄어들어요. 그래서 총공리는 90! 반면 어떤 사회는 90명이 10씩 공리를 누리는데, 10명은 소음으로 귀머거리가 된 상태그래서 비판적 공리주의는 후자 보다 전자를 우월한 사회로 봐요. 약자우선주의.

 

하지만 비판적 수준의 공리주의가 모든 척도가 될 순 없어요. 모든 공리주의는 실존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요. 만약 한 국가는 꾸준히 가난하지만 굶주리지는 않는 사회고, 또 다른 사회는 지금은 잘 살지만 앞으로는 폭삭망해서 아사자가 곧 나올 것 같은 국가가 있다고 가정해 볼게요. 어떤 국가가 더 올바른 사회일까요

 

문제는 미래의 실존

윤리학에서는 영향적 견해(Person-affecting view)와 실존적 견해(existential view)로 옳고 그름을 설명해요. 당연히 긍정적인 영향이 있으면 좋은 사회일텐데요. 문제는 미래에 등장할 사람입니다. 공리주의에선 존재하지 않는 사람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므로, 그들에게 도덕적 선에 대한 권리나 의무를 주지 않아요.

 

🔎 크게 보기

어렵다고요? 네... 미래라는 이슈가 얽히면, 옳고 그름의 문제는 매우 복잡해집니다. 예를 들어 태아의 생명권(미래의 실존)과 산모의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현재의 공리) 같은 것이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또 환경을 살려서 미래 세대를 보호(미래의 실존) 해야 하나, 아니면 파괴해서라도 현재 우리가 잘 살아야하나(현재의 공리) 같은 이슈들이 대표적입니다. 우리가 끊임없이 사유해야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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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다’
이는 피터 드러커가 늘 강조하던 경구입니다.
훌륭한 내일을 창조하기 위해서는
오늘의 안정된 상태를 주체적이며 의도적으로 파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일을 예측하려는 사람들이 아닌, 내일을 창조하려는 사람들,
즉 오늘을 스스로 파괴하는 사람들이
미래의 주인공이 됩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보면 예측은 맞지 않았다.
언제나 그랬다.
따라서 미래에 대비하려면 미래를 예측하기 보다는
창조해나가야 한다는 발상의 전환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미래를 창조하고 선도해 나갈 것이다.
- 윤종용 전 삼성전자 부회장, ‘CEO 윤종용’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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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들의 자신감이나
학습 호기심은 최하위 수준이다.
어떤 학습법도 호기심을 이기지는 못한다.
과도한 학습이 아이들의 호기심을 죽이고 우리의
교육 경쟁력을 떨어뜨리는 가장 큰 주범인 것이다.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초중등 시절의 과도한 학습으로
아이들이 불행하다는 점이다. OECD보고서에 따르면
회원국 27개국 및 비회원국 15개국 중에서 한국
학생들이 몇 해 동안 가장 불행한 것으로
나타났다.


- 조기숙의《지금 당장 교육을 빅딜하라》중에서 -


* '호기심 최하위'.
어둡고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아이들의 앞날을 생각하면 암울하기까지 합니다.
호기심은 미래를 여는 원동력입니다. 자동차로 치면
연료와 같습니다. 아무리 좋은 자동차도 연료가 없으면
굴러갈 수 없습니다. 4차산업, 인공지능, 우주탐사,
로봇왕, 대문호, 명상가, 영적 세계도 그 시작은
호기심에서 비롯됩니다. '호기심 최하위'를
'호기심 천국'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아이들의 장래도
밝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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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와 미디어의
이다음은 무엇인가.
또 다른 종류의 국가적 위기가
닥쳤을 때 대중의 불안과 혼란을 가중시키는
쪽보다는 좀 더 책임 있는 역할을 해주는
정치와 미디어, 그 행복한 미래로
가는 길은 어느 쪽일까.


- 조선희의《상식의 재구성》중에서 -


* 흔히 국가의 백년대계를
'교육'이라 합니다. 미래 세대의 미래를
책임지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우선되는
백년대계는 무엇일까요. '정치'와 '언론'입니다.
우리 모두의 현재는 물론 미래의 행복을
좌우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책임이 막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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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혼돈 및 불확실성과 사는 법을 배워야 하고,
그것에 편안해지는 법을 배워야 한다.
확실성이 없는 곳에서 확실성을 찾지 말아야 한다.
인생은 흘러간 다음에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리 내다보고 살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하려면 불확실성 속으로 걸음을 내딛고,
그런 다음에 그 불확실성 속에서 우리 스스로 안정감의 영역을 만드는 수밖에 없다.
- ‘미래를 다시 생각한다’에서


'사과는 예측하지 못한 순간에 우리 앞에 떨어지지만
당신이 직접 과수원에 가서 나무를 약간 흔들어 준다면
사과가 떨어질 가능성은 더욱 많아지게 됩니다.' (찰스 헨디)
안정 보다는 혼란 속에서 편안함을 느낄 수 있어야
살아남는 조직의 영광스런 대열에 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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