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평등, 박애 그리고 지금, “연결되지 않을 권리.” – <워싱턴포스트>
연결되지 않을 권리의 법제화는 한국에서도 시급해 보인다. 한국은 프랑스보다 노동환경이 열악하다. 프랑스는 주 35시간 노동제를 도입했지만 한국은 주 40시간으로 규정된 법정근로시간조차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한국의 평균 노동시간(2015년 기준 연간 2113시간)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멕시코에 이어 두 번째로 길다. 장시간 노동은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해 극대화되고 있다.
한국노동연구원이 2016년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전체 노동자 10명 중 7명이 퇴근 후에도 스마트폰 등으로 업무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평일에는 평균 86.24분 더 일했고, 휴일에는 95.96분 일했다. 업무시간 이외에도 스마트기기를 통한 노동시간이 주당 11시간(677분)이 넘는 셈이다.
한국의 노동환경은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해 시·공간을 넘어 확장된다. ‘단체카톡방(단톡방)’을 통한 상사의 지시는 노동자를 ‘SNS 사무실’에 가둔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도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한 논의가 활발해지고 있다. 지나친 업무 스트레스라는 입장과 사규 정도로 정하면 될 악습을 굳이 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지나치다는 입장으로 찬반이 갈리기도 하지만, 대체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에 대해 우호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연구센터가 직장인 1천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대다수인 86.6%가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인정하거나 존중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법제화·내규화로 명시해야 한다는 의견에 찬성한 비율도 85%나 된다. 이런 여론에 힘입어 연결되지 않을 권리 관련 법안과 정책도 논의되고 있다.
2016년 6월22일 신경민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 발의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명시한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근로시간 이외에 전화, 문자 메시지, SNS 등 각종 통신수단을 이용해 업무 지시를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에 계류 중이다. 제19대 대통령선거 과정에서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퇴근 후 SNS 업무지시 제한’을 주요 공약으로 발표하기도 했다.
연결에서 벗어나기 위한 ‘세컨드폰’
법과 제도가 바뀌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개인적 차원에서 연결에서 벗어나기 위한 움직임도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세컨드폰’이다. 퇴근 후 스마트폰을 통한 연결에서 벗어나기 위해 최근 젊은층 사이에서는 세컨드폰이 인기를 끌고 있다. 스마트기기를 통한 연결로부터 사생활을 간섭받지 않기 위한 목적으로 기존에 사용하는 스마트폰 이외에 다른 휴대폰을 사용하는 것이다.
세컨드폰을 사용하는 데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알뜰폰’ 등 중저가 휴대폰을 추가로 사는 방법과, 단말기 하나로 2개의 전화번호를 사용하는 방법이다. 즉, 세컨드폰은 공적인 용도의 휴대폰과 사적인 용도의 휴대폰을 구분해, 사생활을 침범하는 ‘연결’에서 벗어난 물리적 환경을 만드는 방식으로 연결되지 않을 권리를 실현한다.
의도적으로 기능을 최소화한 휴대폰도 출시되고 있다. ‘더라이트폰(The Light Phone)’은 통화 기능만 탑재한 휴대폰이다. 크라우드펀딩 서비스 ‘킥스타터’를 통해 2015년 처음 선보였다. 현재는 투자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도 더라이트폰을 구매할 수 있다. 더라이트폰 측은 “더 많은 ‘연결’이 우리를 더 행복하게 만들 수 없다”라고 통화만 가능한 휴대폰을 만든 배경을 밝혔다.
신용카드 크기만한 더라이트폰의 기능은 단순하다. 전화를 받고 거는 것과 시간을 확인하는 기능만 들어 있다. 전화번호도 최대 9개까지만 저장할 수 있다. 문자나 이메일도 확인할 수 없다. 블루투스 기능 역시 빠졌으며, 스마트폰과 연동되지도 않는다. ‘세컨드폰’인 더라이트폰은 잠시나마 스마트폰으로부터 떨어진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기획됐다.
더라이트폰 측은 “기술은 우리를 노예화하지 않고 우리에게 봉사해야 한다”라며 “우리는 반기술을 지향하지 않는다. 우리는 인간을 지향하며 우리의 삶을 되찾고자 한다”라고 자신들의 홈페이지를 통해 전했다. 흰색과 검은색 두 색상으로 판매되는 더라이트폰은 현재 미국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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