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그러운 날씨. 흔들리는 나뭇잎과 햇살. 다정한 인사와 안부. 마음이 담긴 메시지. 나를 감동하게 하는 것이나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을 적으라면 아마도 이 페이지를 빼곡하게 다 채울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감동과 행복의 역치가 낮은 사람.
- 바리수의《이젠 네가 피어날 차례야》중에서 -
* 저에게는 아주 작은 자극에도 감동과 행복을 느끼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일상에서도 자주 감탄하고 감동하고 감사하고 행복해합니다. 내 감정마저 누군가의 허락을 받을 필요 없습니다. 나는 내 마음을 보냈고 그걸 받아주는 건 상대의 몫이니까요. 나는 그냥 내 몫의 일을 하면 되는 거니까요.
보통은 일과 놀이가 구분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팬데믹이 몇 년째 지속되면서 워케이션을 말하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물론 그 이점을 누리는 이들도 늘어나고 있다. 어쩌면 워케이션이라는 경향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지도 모른다.
콜카타에서 마케팅 사업가이자 콘텐츠 제작자로 일하는 베디카 바이아는 "1년 넘게 재택근무를 하다 보니 분위기 전환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지난 여름 그녀는 친구와 함께 인도 파르바티 계곡으로 15일간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는 현지의 다양한 숙소 체험과 자연 환경, 패러글라이딩을 즐기는 한편, 노트북을 사용해 업무도 처리했다.
바이아에겐 이미 오래전부터 원격근무가 익숙했다. 하지만 그녀는 팬데믹으로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일하는' 사고방식이 일반화되면서 일과 여가를 결합한 여행을 시도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녀는 "여행은 정신 건강에 놀라운 영향을 주는 한편, 창조적 한계를 극복하는 데도 유익하다"고 말했다.
바이아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니다. 많은 국가에서 워케이션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워케이션은 일(work)과 휴식(vacation)의 합성어. 예를 들면 일주일간 산장을 예약하고 그곳에서 원격으로 일하는 것이다. 이러한 워케이션은 팬데믹 초기 폐쇄 기간에 지식 노동자들이 비좁은 아파트 대신 여행지의 숙박업소를 이용하면서 유행하게 됐다. 물론 그 이전에도 출장과 휴가를 결합한 '블레저(bleisure)'라는 개념이 있었다. 출장지에서 회의를 마친 주말에 도심을 여행하거나, 출장에 휴가를 붙이는 것이 블레저다.
올해로 3년차에 접어드는 팬데믹은 세계적으로 감염자가 조금씩 줄어드는 추세다. 하지만 기업들이 여전히 원격 근무 정책을 시행하고 있는 터라, 워케이션의 인기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해 나온 조사에 따르면, 인도 노동자 3000명 중 85%가 2021년에 휴가를 사용했다. 캐나다 노동자의 4분의 1 이상은 올해 여행을 꿈꾼다고 했다. 8개 국가를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5500명의 응답자 중 65%는 2022년에 출장에 휴가를 붙일 계획을 밝혔다.
사실 워케이션은 직관에 반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일과 관련된 스트레스가 정신 건강에 해롭다는 인식이 생겨나면서, 우리는 일과 개인의 삶에 경계를 중시하게 됐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팬데믹 속에서 쌓은 적응력 덕에 일과 놀이를 결합해 쉬는 것이 가능해졌다고 말한다. 이러한 휴식의 이점(일상의 의무를 다하면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는 것 등)을 고려하면, 팬데믹 이후에도 워케이션은 지속될 전망이다.
'충전 및 열정 채우기'
코로나19 이전부터 일부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은 이미 블레저를 즐겨왔다. 캐나다 웨스턴 대학에서 조직행동학을 가르치는 마사 마즈네브스키는 "블레저는 일반적인 출장이나 여행으로 경험할 수 없는 것들을 경험하게 해준다"고 말했다. 그녀 역시 출장을 갈 때면 휴가를 붙여 자기 개발 활동을 하거나, 여행과 네트워킹을 통해 휴식을 취한다.
지금은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블레저나 워케이션을 즐긴다. 출장을 가지 않더라도(현재는 직장인중 소수만 출장을 간다. 팬데믹으로 출장은 급격히 줄었고 기업들이 직원들의 위험을 최소화하려 하기 때문에 2024년까지 완전히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원격 근무와 유연 근무가 확고하게 자리잡았기 때문에 하루종일 책상에서 일만 하던 이들이 업무의 책임은 다하면서도 다른 선택지도 둘러볼 수 있게 됐다.
에딘버러 소재 기업 및 커뮤니케이션 법률 회사의 선임 파트너인 앤디 드레인은 팬데믹 전에는 "워케이션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말했다. "동료들과 고객들은 항상 제가 사무실 아니면 그들의 작업장에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것이다.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이 사업에 훨씬 유연성이 크다는 게 입증됐죠."
드레인은 지난달 영국 레이크 디스트릭트로 휴가를 떠났다. 부모와 함께 시간을 보내기 위해 간 곳이지만, 그는 그곳에서 원격으로 일하면서 휴가도 즐겼다. 그는 "눈부시게 아름다운 환경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고 일상 생활에도 변화를 줄 수 있었다"며 "여유로운 점심과 이른 업무 종료, 가족과 저녁을 함께 만들거나 이틀간 여행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에너지를 충전하고, 열정을 채워서 일터로 돌아왔습니다."
지난달 미국의 한 여행사가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드레인의 경험은 꽤나 보편적인 현상이다. 워케이션을 다녀온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 5분의 4 이상이 여행을 통해 생산성과 창의성을 높아졌고 업무 스트레스가 줄었다고 답했다. 3분의 2 이상은 워케이션의 목적이 정신적, 정서적 배터리를 충전하는 것이었다고 답했다. 아울러 새로운 장소를 가보는 것이 워케이션의 목적중에 두 번째로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우리 모두 전환을 위한 훈련을 받았다'
일과 놀이는 분리돼야 한다는 기존의 관념과 워케이션은 분명 상충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동안 탁구대와 축구, 소파 등 사무실에 즐길 거리를 만들려는 기업의 노력은 눈가림으로 평가되어 왔다. 하지만 워케이션은 노동자들이 자신에게 의미있는 방식으로 일과 놀이를 결합하는데 유연성을 활용하다는 점이 핵심적인 매력이다.
마즈네프스키를 비롯한 전문가들은 일과 놀이가 대치하는 '워라밸'보다는 일과 삶이 통합된 블레저와 워케이션이 보다 현실적이라고 말한다. 일주일간 별장에서 일하는 것은 일과 여과를 분리하는 게 아니라, 여가를 언제 어떻게 어디에서 업무에 포함시킬 것인지를 정한다는 뜻이다. 마즈네프스키는 수세기 동안 사람들이 집 밖에서 생활하며 일을 해왔다고 지적한다. "이들 사이의 '균형'을 생각하게 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라는 것. 그녀는 워케이션을 통해 "일과 삶이 통합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일과 놀이를 구분하라고 배웠지만, 전문가들은 팬데믹을 통해 많은 이들이 의미 있는 방식으로 그 둘을 통합하게 됐다고 말한다.
물론 두 가지를 결합하는 것보다 일이나 놀이 중 하나에 전념하는 것을 선호하는 이들도 있다. 미국 플로리다 대학의 관광경영학과 교수인 레이첼 푸는 사람들이 워케이션을 즐길지 말지는 "개인의 성격과 행동 선택"에 달려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들은 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었을 때만 휴식의 느낌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푸 역시 많은 화이트칼라 노동자들이 팬데믹 속에서 워케이션을 위한 기술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그녀는 "(팬데믹 속에서) 우리의 행동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집은 학교이자 일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전환하는 법을 배웠죠. 지난 2년간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한 가지에서 다른 것으로 매우 효과적인 전환을 할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그렇다고 해서 워케이션이 실제 휴일을 대체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사람들에겐 일하지 않는 시간이 필요하다. 워케이션은 유급 휴가의 대체물이 아니라 보완재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업무 스트레스와 과로 위험이 늘어날 수 있다. 지난 2월 발표된 익스페디아의 설문에 따르면, 미국인의 78%가 휴일에 '비생산적'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목표하면서도 절반은 노트북을 끼고 살고 41%는 화상통화에 참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워케이션을 달갑지 않게 여기는 이들도 많다. 응답자의 61%가 일과 놀이를 합친 여행을 적절한 휴가로 생각지 않는다고 답한 것이다. 이는 많은 사람들이 일로부터 자유로운 휴가를 원하지만, 그것을 얻기가 쉽지 않은 현실을 보여준다.
팬데믹이 보다 완화되면, 워케이션은 형평성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누구나 여행지의 숙소를 빌려 1주일씩 일할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마즈네프스키는 워케이션이나 브레저가 늘어나면 "조직 안에서 꼭 특정 장소에서 일해야 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격차가 커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러한 추세가 기회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비록 유급 휴가를 다 쓴 상황에서도 출장에 하루를 붙여서 출장지를 여행하거나 자연 환경 속에서 일하며 정서적 여유를 다지는 것 등이 그러한 기회다.
기대를 관리하라
다양한 환경에서 생산성을 유지하는 것에 대한 노동자들의 관심을 고려하면, 워케이션은 앞으로도 지속될 듯하다. 푸는 "할 일만 제대로 한다면, 많은 기업들은 (당신이 어디에서 일하든) 신경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원들을 잘 챙기는 것은 기업에도 이익이 된다. 새로운 세대들은 어디에서나 일할 수 있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기에, 유연성은 직원들의 장기 근속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2022년 1월 카약과 유고브가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캐나다의 Z세대 노동자중 38%가 2022년에 휴가를 갈 계획이라고 한다. 이는 그 윗세대보다 더 높은 수치다.
바이아와 드레인 역시 또 다른 워케이션을 계획중이다. 바이아는 최근 20일간의 워케이션을 진행했고, 3월에 또 다른 워케이션을 떠날 예정이다. 그녀는 워케이션을 누리려는 이들에게 현실적인 포부를 가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녀는 "일반적인 휴가에서 얻을 수 있는 휴식과 안정을 기대하면, 워케이션을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만약 당신이 일을 하면서 주변도 여행하고 싶다면, 시간을 알뜰하게 써야 합니다." 그녀는 미리 계획을 세우고, 일과 놀이에 충분히 시간을 할당하기 위해 기간을 길게 잡을 것을 권했다. 그리고 친구와 함께 간다면, 같은 목표를 가진 사람을 고르라고 조언했다. "휴가를 즐기려는 사람과 워케이션을 하려는 사람은 섞일 수 없습니다."
드레인은 일과 개인의 삶이 분리되어야 한다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팬데믹 동안 우리가 일하는 방식이 달라졌고, 그 역시 시골에 있는 가족과 소중한 시간을 보내며 일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그는 워케이션의 신봉자가 됐다. 그는 "워케이션의 묘미"는 "가족과 의미있는 시간을 보내면서" 업무의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는 10월 레이크 디스트릭트에서 또 다른 워케이션을 예약한 그는 자신과 직원들 모두 이 새로운 유연성의 혜택을 누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에는 사람들이 꿈에 그리던 일을 하기 위해서 은퇴를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더 이상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워케이션을 이용할 거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