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하루에 삼백 번을 웃지만 어른은 겨우 다섯 번 웃는다는 말이 있다. 유년기와 성년기 사이에 어떤 일이 벌어지기에 우리는 그렇게 진지해지는 것일까? 미국의 코미디언 제리 사인펠드는 별 목표나 계획 없이 흐트러진 시간을 '쓰레기 시간'이라고 부르면서, 그러나 그 시간이야말로 자신에게 소중하다고 말한 적 있다. 어쩌면 우리도 그렇게 쓰레기 시간을 보낼 때 오히려 일에 유년기의 활기와 패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지 모른다.
- 브라이언 키팅의 《물리학자는 두뇌를 믿지 않는다》 중에서 -
* 아이들은 선입견이 없습니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봅니다. 웃음도 많습니다. 개똥이 굴러가도 깔깔대고 웃고, 낙엽이 구르면 구르는 대로 대굴대굴 웃습니다. 하지만 나이 든 어른들은 다릅니다. 자신이 쓴 안경 너머로 세상을 바라보고 자기 가치관에 비추어 판단하기 때문에 순수함을 쉬 잃고 웃음도 잃어갑니다. 동심으로 돌아가, 삼백 번까지는 아니어도 몇십 번이라도 웃음을 되찾으면 본인에게 좋습니다.
이런 체험은 강렬한 기쁨과 환희를 동반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일상에서 체험하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기쁨이다. 실제로 체험해 보기 전까지는 머릿속으로도 상상할 수 없는 기쁨, 그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혈관이 따끔거리고 심장이 쿵쾅거리는 그런 기쁨이다. 이 현상을 체험하는 순간에는 우주 만물을 이해하게 된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이는 말로 설명하기 불가능한 지적 깨달음의 경지다.
- 윌리엄 워커 앳킨슨의 《그대, 아직도 '나'를 찾고 있는가?》중에서-
* 심장이 쿵쾅거리는 그 '기쁨'의 순간은 느닷없이 다가옵니다. 짐작도 할 수 없는 그 순간, 나도 멈추고 세상도 멈춘 듯한 절체절명의 순간, 무어라 표현하기 어려운 그 순간이 지나고 나면, 기쁨의 미소가 배어 나옵니다. 이유도 모를 환희가 솟구처 나옵니다. 무엇무엇이 어떠어떠해서의 기쁨이 아니라, 이유 없는 기쁨입니다. 그 기쁨의 순간은 두 번 다시 같은 형태로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현재의 기쁨이 더없이 값지고 소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들을 수 있는 소리만 듣는다. 주파수가 너무 높거나 낮은 음은 들을 수 없다. 지진파는 너무 낮아서 들리지 않는다. 돌고래가 내는 소리는 일부만 들을 수 있고, 박쥐의 초음파는 너무 높아서 듣지 못한다. 주파수가 높아질수록 높고 가늘게 들리다가 어느 순간 고요해진다. 그렇다고 음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듣지 못할 뿐이다.
- 김소일의 《말과 침묵》 중에서 -
* 우주 공간은 우리가 감지할 수 없는 빛과 소리로 가득 차 있습니다. 지구가 공전하면서 내는 어마무시한 소리를 우리가 듣게 된다면 고막이 터질지도 모릅니다. 태양빛도 극히 일부의 가시광선만 볼 수 있을 따름입니다. '가시구역'과 '가청구역'이라는 실로 신묘막측한 보호 장치 덕분에 우리는 살아갈 수 있습니다.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려 할 필요가 없고,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습니다. 마음놓고 사랑하며 살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