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꾸다가 "어, 알겠어, 이건 꿈이야!" 하고 분명하게 느끼게 될 때가 있다. 이런 꿈을 '자각몽'이라고 부른다. 깨어나서야 "아, 그래 꿈이었구나" 하게 되는 보통의 꿈과 달리 자각몽 상태에서 '깨어난' 사람들은 놀라운 통찰을 발휘하고 비상한 창의적인 에너지를 풀어낼 수 있다. - 제레미 테일러의《사람이 날아다니고 물이 거꾸로 흐르는 곳》중에서 - * 자각몽. '꿈 속의 꿈'을 일컫습니다. 저도 이따금 이 자각몽을 꿉니다. 꿈 속에서 '내가 꿈을 꾸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특별한 체험입니다. 꿈에서조차 또 다른 꿈을 선물로 받는 셈입니다. 무의식의 저 깊은 곳에 잠겨 있던 초현실적인 그림 한 조각이 추상화처럼 수면 위로 둥실 떠오릅니다.
대도시의 분주한 삶 속에서 현대인들이 망각해버린 중요한 점들을 흥미롭게도 초기의 인류는 분명하게 믿고 있었다. 탈피가 불멸성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한 것이다. 한 예로 수 세기 동안 북보르네오의 두순족은 신이 세계를 창조하고 나서, "자신의 허물을 벗어던지는 자는 누구든 죽지 않으리라." 이렇게 선언했다고 믿었다. - 마크 네포의《고요함이 들려주는 것들》중에서 - * 칭기스칸은 "성을 쌓는 자는 망한다"고 했습니다. 자기 틀 안에 안주하는 것을 경계한 말입니다. 단단한 자기 울타리, 두꺼운 허물을 벗어 던져야 새로운 세상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대도시의 분주함 속에 굳게 갇혀 쳇바퀴 돌 듯 살고 계십니까? 이런 일상을 이따금은 과감히 깨야 합니다.
인생은 한 방향으로 일관되게 꾸준히 나아가는 게 좋다. 인생은 얼마나 빨리 달리느냐 하는 속도가 아니라 얼마나 옳은 방향으로 달리느냐 하는 방향이 중요하다. 비행기는 이륙할 때 3,4 킬로미터 활주로를 달리면서 연료의 절반을 소비한다. 온 힘을 불태우는 것이다. - 문용식의《꾸준함을 이길 그 어떤 재주도 없다》중에서 - * 인생에서 활주로를 달리는 시기가 있습니다. 모든 에너지를 쏟아 혼신의 힘을 기울여 하늘로의 이륙에 성공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그러나 그 이륙보다 더 중요한 것이 방향입니다. 그 방향이 잘못되면 이륙에 성공한다 해도 엉뚱한 구름 위를 날게 됩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다른 어떤 누군가가 당신을 괜찮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우리 자신만은 스스로 괜찮게 생각할 수 있다. 나는 당신이 당신 자신을 괜찮게 생각하고 남이 아닌 당신의 기준으로 살기 바란다. 이것은 또한 내 자신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 박대령의《상처받은 사람들을 위한 관계맺기의 심리학》중에서 - * 우리는 남의 시선에 너무 얽매여서 자신을 한정된 테두리에 놓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의 눈치 보지 말고 자신을 소중한 사람으로 여기세요! 자신의 기준으로 열심히 살아간다면 괜찮은 삶이 될 것입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파이팅하시길 바랍니다.
우리가 접촉을 원하는 데는 많은 이유가 있다. 가장 분명하고도 심오한 이유는 접촉이 우리를 치유해주기 때문이다. 손을 대면 한 방울의 물도 퍼져나가듯, 우리가 안고 있던 고통도 가벼워진다. 홀로 감당하다가 얻은 응어리도 진실한 사랑의 접촉에 풀어진다. 접촉은 모든 언어의 밑에 있는 공통의 몸짓이자 에너지다. - 마크 네포의《고요함이 들려주는 것들》 중에서 - * '접촉'도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어떤 접촉은 오히려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깁니다. 함부로 접촉하면 절대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치유의 접촉'은 그와 전혀 다릅니다. 모든 상처와 통증이 눈 녹듯 녹아내립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약손처럼! 힐러의 손처럼!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단지 진지하게 살기 위해서였다. 그것은 삶의 본질적인 사실만을 대면하기 위해서였고, 삶이 가르쳐주는 것을 배울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해서였다. 나는 삶이 아닌 것을 살기 싫었다. 삶이란 그만큼 소중한 것이다. - 허아림의《사랑하다, 책을 펼쳐놓고 읽다》중에서 - * 데이비드 소로의 말을 재인용 한 글입니다. 누구나 삶다운 삶, 진지한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제가 깊은산속 옹달샘을 꿈꾼 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삶을 더 아름답고 진지하게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우리는 숨쉬고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삶을 소중하게 여기고 있기 때문에 살아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