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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생후 9개월쯤이면,
그러니까 걸음마나 말을 떼기도 전에
이미 손짓을 시작한다. 물론 태어난 직후에도
손짓을 하지만 이 동작이 의미를 띠기
시작하는 것은 9개월이 지나서다.
손짓은 신기한 몸짓이다. 어떤 다른
동물도 손짓을 하지 않는다.
손이 있는 동물이라도
마찬가지다.


- 브라이언 헤어, 버네사 우즈의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 중에서 -


* 대화를 할 때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손짓을 합니다.
손짓을 보노라면 그 사람의 의중이 더 잘 읽힙니다.
때로 우리는 말없이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거나
사랑하는 이의 몸을 만집니다. 손짓은 말보다
더 많은 뜻을 전달하기도 합니다.
손짓 하나로 더 가까워지고
손짓 하나로 멀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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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몇 살부터 노인에 속할까요?
10대는 10세에서 19세까지가 아닙니다.
10세부터 99세까지는 모두 10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100세가 될 때까지는 모든 사람이 아름다운 10대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나이에 좀 더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야 하지 않을까요?
- 나카타니 아키히로, ‘행복어 사전’에서


혹시라도 나이 때문에 망설였던 일이 있는 분들에게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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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우리 아들이 사람 보는 눈이 좋아서 이런 색시를
얻었다." 아내는 나에게 새로운 삶을 선물해 주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또 다른 기회가 되었다. 불안정하던
삶이 아내를 만나 안정적으로 바뀌었다. 인성이
너무나 아름다운 사람, 모든 사람은 동등하다는
가치관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 아름답게
바라보는 부부. 아버님이 하늘에서
우리를 보고 웃고 계셨으면 한다.


- 팝핀현준의 《세상의 모든것이 춤이 될 때》 중에서 -


* 사람 보는 눈!
이를 가리켜 '안목'이라 합니다.
사람을 보는 안목이 없어 대사를 그르치는 일이
많습니다. 드러나는 화려함이나 감언이설에 홀려,
시야가 흐려져 옥석을 못 가리는 예도 많습니다.
인륜지대사인 혼인에 있어서는 더욱이 안목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일단
선택한 뒤에는 잘 보완하며
잘 살아갈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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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namu.wiki/w/%EC%82%AC%EB%9E%8C%EC%9D%80%20%EA%B3%A0%EC%B3%90%20%EC%93%B0%EB%8A%94%20%EA%B2%8C%20%EC%95%84%EB%8B%88%EB%8B%A4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다 - 나무위키

한국어의 관용구로, '사람은 천성이 바뀌지 않으므로 문제가 있는 사람을 계몽하고 교화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namu.wiki

현직 형사들이 특사 등으로 사면된 범죄자들이 사회에 적응을 못 해 짧게는 한 달, 길게는 반년 만에 다시 범죄를 저지르다가 체포된다고 자주 증언하고[1], 뉴스에서도 과거에 범죄를 저지른 사람이(전과 O범) 계속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모습이 소개되면서 생긴 인식이다.[2] 미디어 특성 상 자극적이자 부정적인 사례만이 너무 자주 소개되다 보니 이게 일종의 밈이 된 것. '공포 마케팅' 문서에도 관련 내용이 있다.

마산 대학교수 살인사건을 보면, 사람이 갱생한다는 것이 쉽지 않다 하는 것을 보여준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이미 사람을 죽여 무기수였던 가해자를,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이윤근 교수는 그를 초등학교 후배라는 이유만으로 선배로서 정성을 다해 옥중 뒷바라지를 다 해주며 조기에 석방되도록 온갖 노력을 다했다. 경찰행정학과 교수로서 미성년자 때 실수한 후배를 다시 고쳐 쓰면 갱생의 길을 걸을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법원도 그렇게 판단하여 풀어줬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교수가 수백만원의 생활비를 여러 차례에 대주자 나중엔 사업 자금을 대줄 것을 요구했고, 거절당한 후에 결국은 앙심을 품고 살해했다. 그래서, "호의가 계속되면은, 그게 권리인 줄 알아요."라는 말도 있다.

사람에게는 경로의존성이 있다. 특히 인간의 이념은 20대 때 형성되어 이후엔 잘 안바뀐다고 한다.# 실제 20대때 막노동을 하다가 변호사가 된 장승수와 같은 사례는 있긴 하나 이것도 드문 사례이며, 나이를 먹어갈수록 극적인 변화는 점점 더 힘들어진다. 그래서 '세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도 있고, '바늘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속담도 있다. 즉, 사람이 달라지긴 해도 큰 틀에서는 달라지기 힘들고 '바늘도둑이 소도둑 되는 수준'으로 변화하는 것을 뜻한다. 일례로 '대도' 조세형은 갱생하여 목사가 됐다고 여러 차례에 나왔는데, 결국 일본에 선교하러 가서도 절도하다가 체포되어 망신당해 그를 믿고 적극 변호하던 엄상익 변호사가 실망을 표하기도 했다. 또, 유명한 조폭 출신들도 맨날 갱생했다며 선교사 활동한다고 미화되다가, 어느날은 다시 불미스러운 일에 엮여 감옥에 가는 등, 이런 사례들이 언론에 많이 알려졌기에 대중들에게 사람은 고쳐 쓰기 힘들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특히 이 인식이 진실임이 못 박히는 데에 영향이 컸던 TV 프로가 바로 백종원의 골목식당. 백종원이 성심성의껏 솔루션해주자 앞으로 잘 따르겠다고 했으면서 얼마 못 가 원래대로 되돌아가고 방송이 조작이라 주장한 뚝섬의 장어집과 경양식집의 주장이 시청자들의 분노를 상당히 끌어냈고, 나중에 이대 백반집[3]이 긴급 점검 방송이 악의적 편집으로 나갔다며 맞대응을 하겠단 발언으로 이 속언이 상당히 주목 받았다.[4]

군대에서도 말썽을 일으킨 사람들의 과거를 조사할 때도 드러나는데, 장교 준사관 부사관 군무원 병 할 것 없이 후임이나 부하를 괴롭히는 사람들은 대개 과거에도 학교나 직장에서 집단으로 남을 괴롭히던 전적이 있다. 원인도 많은데, 묶어서 보면 선천적으로나 가정환경이 좋지 않아 후천적으로 열등감이 있거나 자존감이 부족한 경우라고 할 수 있다.

그들은 즐거움을 위해 남에게 고통을 주는 데에 아무런 거리낌도 없다. 패턴을 보면 쌓인 분을 풀듯이 비꼼과 패드립 같은 욕설로 시작하여 같이 괴롭힐 사람들이 알아서 참여할 시간을 준 다음, 사람과 상황에 따라서 협박과 물리적 폭력 등을 아낌없이 행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뉴스에서 나오는 군대 부조리로 인한 사건 사고 기사가 대부분 이 루트를 탔다. 괜히 나쁜 짓 하지 말라고 해서 살해당하기도 한다.

군 내 부적응으로 군무 기피를 하던 사람들의 과거는 이런 사람들에게서 괴롭혀진 경우가 꽤나 빈번했다. 물론 쓸데없이 나대다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는 것처럼 당하는 경우도 있으나 이 역시 자신의 과거를 희석하기 위해 상당히 밝게 행동하려다가 위의 집단에게서 당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상부와 동기들이 조금만 코칭해 줬으면 본인은 물론 군인들에게도 좋은 결과를 만들어냈을 것이지만 그러지 못했다. 그랬으면 매년 2개 대대를 완편하고도 남을 인원들이 복무 부적응으로 보충역 편입이나 제대하거나 심하면 면제를 당하고 상처만을 안은 채로 집으로 돌아가진 않았을 것이다.

물론 상술한 문제 집단이 군무 기피를 위해 이를 연기하거나 후술한 피해 집단이 보상심리로 같은 피해 집단에게 시비를 거는 경우도 있는데, 심사하는 간부들과 병영 생활 상담사 등 심사를 하는 사람들은 당연히 이를 알고 있음에도 너무 대놓고 티를 내지 않은 이상에야 그냥 눈감고 넘어가 줬다. 그 이유는 '괜히 붙잡고 있어봤자 아군에게 총질밖에 더 하겠나?'와 '저런 밥버러지를 위해 굳이 국가의 돈을 처들여야겠나?', '사고 나면 괜히 우리에게 책임 소재 올 수도 있다'가 가장 주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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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는 습관을 들이세요.
지금 이 순간 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당신에게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줄 겁니다. 그러나
분석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저 바라보세요.
내면에 집중하세요. 감정의 에너지를 느껴야 합니다.
만약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다면, 내면의
에너지 장에 더 깊이 집중합니다. 그것이
존재로 들어가는 입구입니다.


- 에크하르트 톨레의《이 순간의 나》중에서 -


* 사람은
밖에서 에너지를 얻고 살아갑니다.
먹는 밥, 마시는 물, 들이키는 공기, 모두 바깥에서
얻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안에서 받쳐주는 내면의 에너지가 충만해야 합니다.
그래야 감정의 기복이 적어지고 방향도 찾게 되고
존재로 들어가는 입구도 열립니다.
자기다움을 지킬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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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
그것은 마치 땅 위의 길과 같은 것이다.
본래 땅 위에는 길이 없었다.
한 사람이 먼저 가고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것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


- 루쉰의《고향》중에서 -


* 그렇습니다.
희망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도 생겨나는 것이 희망입니다.
희망은 희망을 갖는 사람에게만 존재합니다.
희망이 있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고,
희망 같은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실제로도 희망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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